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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양극화, 계층화

moonstyle 2022. 6. 26.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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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공휴일은 일요일과 국경일, 설날, 성탄절 등 달력의 모든 빨간 날이다. 원래 관공서에만 적용되었는데, 올해부터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모든 근로자의 '법정' 공휴일이 되었다. 즉, 작년까지는 주 1회 휴무나 근로자의 날과 같이 법으로 정해진 유급 휴가를 빼고는 회사에서 공휴일에 안 쉬고 일을 시켜도 법적으로는 상관없었다는 말이다.

 

 

휴가철 풍경


대기업, 중견기업 등은 대체로 관공서를 따라 공휴일은 유급휴일로 처리해주었지만, 중소기업에서는 공휴일을 연차에서 차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이 공휴일 연차 대체가 불가능하게 법이 개정되었는데, 또 어떤 편법과 꼼수를 동원할지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는 무려 쓸 수 있는 [연차]가 존재하는 아주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체 기업 중 20%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연차도 휴일도 여전히 해당사항이 아예 없다. 휴가에 관해 계약서에는 그럴듯하게 '근로기준법에 따름' 이라고 되어있는데, 법에는 없으니 눈속임이자 말장난이다. 그리고 영세한 사업자의 현실을 감안해서 예외로 두고 있는 것이 오히려 '회사 쪼개기' 수법 등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5인 이상도 연차는 자기네들이 알아서 서류상에서 처리한 것으로 만들어 사실상 없었고 어린이날, 한글날 등의 공휴일은 얄짤없이 출근이었으며, 폭동 일어날까 싶어 눈치 봐서 여름에 4일 정도 휴가를 주기도 한다.

"그래도 일주일은 쉴 수 있네"

아니, 주말 포함이다. [토-일-월-화] 또는 [목-금-토-일] 주면서 4일이라 생색내며, 있는지도 모르는 연차를 서류상에서 처리한 후, 주말 빼면 실제로는 2일간의 감지덕지한 휴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어려운 회사 사정에 주지 않아도 되는 4일이나 직원들에게 은혜를 베풀다니 과연 이 시대의 참 경영인이다.

내가 다니던 곳은 갑자기 여름휴가로 2주 가까이 쉬라면서 4일 빼고 나머지 무급으로 처리한다고 통보했다. 무급휴가는 법적으로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완전 무급, 자발적 결근하라는 말이었다. 가장 황당했던 건 놀러 가니까 또 전화와서는 할 일 많다며 나오란다.

 

 

 

강성노조가 있는 대기업은 연차 외에 "여름휴가"가 별도로 있는 경우도 있다. 연차 개념이 없던 개발도상국 시절 만들어진 혹서기 휴가를 다시 없애자니 노조에서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2주간의 공식적인 여름휴가에 자신의 연차를 더해서 한 달 쉬는 경우도 봤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자격증 5개 이상을 가진 4년제 대졸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휴가 없이 일하는 것과 80-90년대 공고 나와서 노동운동의 수혜를 받아 철밥통으로 근속한 사람의 워라벨 차이는 그 사람의 능력과 무관한 시대적 국가적 체계적 차별이다.

 

 

 

주 4일 논하기 전에 기존 근로기준법 관리감독 역량을 대폭 확대해도 모자란 판국에, 있는 법과 제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영세기업 근로자의 인권은 나몰라라 하면서 선진국 따라, 유행 따라 기득권 일자리를 위한 제도 선전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양새다.

작은 회사의 현실을 감안한다는 이유로 5인 미만 사업장은 수십년이 지나도 계속 예외로 두고 있는데, 몇 년을 근속한 직원에게 휴가 줘서 어려워진다는 수준의 회사는 망할만하다고 본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5인 미만 / 30인 미만 / 300인 미만' 등 사람 수대로 급을 나누고 근로자를 차별하는 한국의 법 제도는, 노조가 떼쓰면 들어주고 노조도 없는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귀찮으니 관행으로 넘기는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휴식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이며, 겉으로는 공정을 논하면서 휴식까지 계층화하는 사회와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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