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천년고도 경주의 미래는 황룡사 복원부터

moonstyle 2022. 6. 2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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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상상 모형 (경주엑스포대공원 전시)

 

역사도시라는 기대감에 도착하면 여느 지방도시와 다름없는 풍경에 지붕에 기와만 갖다 붙인 퓨전 건물이 장식하고 있는 도시. 미적 감각이 전혀 발휘되지 않은 난개발로 천년의 고도는 불과 반세기만에 국적 불명의 도시로 전락해버렸다. 현재의 경주를 역사도시로 대외에 홍보하며 해외의 관광객을 끌어드리는 작업은 과대포장 광고가 되었고 재방문율은 극히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천년고도 경주의 관문인 터미널 풍경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 등의 유적지, 유물들만으로 항상 새롭고 남다른 것을 원하는 우리의 고객들이 끊임없이 찾기를 바라는 일은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꼴과 다를 바 없다. 대량관광시대를 넘어 관광객의 눈은 갈수록 높아져 가고 그들의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뚜렷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컨텐츠가 필요한데 경주에는 세대를 넘은 감흥을 크게 이끌어낼 만한 동력이 별로 없다.

이렇게 사라진 역사도시 경주를 되살리자는 목소리가 2000년대부터 커져갔고 정부 차원의 조단위 투자가 시작된 지 벌써 20년 가까이 지나오고 있지만 체감하는 시민이나 관광객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태생적으로 신라라는 훌륭한 문화컨텐츠 기반을 갖고 있으면서도, 유적지에 편의시설 몇 개 갖다 놓으면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복원된 월정교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과 현실

2005년부터 문화관광부와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가 공동으로 추진한 '경주역사문화도시조성사업'은 약 2조원을 투입해 로마와 같은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로 만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의 전체 사업기간은 30년(2005~2034)으로, 크게 4개의 단계로 나누어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 1단계: '05~'09년의 5년간으로 총 3천5백억 원을 투입하여 고도를 느낄 수 있는 신라 왕계의 조성, 오감으로 체험하는 관광체계 마련, 불국토 남산과 종교유적지 환경조성, 지역 활성화를 위한 명품 관광점 조성사업

 - 2단계: '10~'19년의 10년간으로 전체 사업 기간중 비교적 큰 규모의 재원을 투입하여 역사·문화·관광도시로서의 면모로 일신하기 위한 각종 인프라 구축

 - 3단계: '20~'29년의 10년간으로 다양한 역사체험, 문화 및 관광활동에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각종 인프라와 연계 개발하여 역사·문화·관광도시로서의 정체성 정립

 - 4단계: '30~'34년의 5년간으로 세계를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로서 로마와 아테네 등 세계 유수의 고도들을 능가하는 경주로 새롭게 완성

 

 

그럴듯한 미사여구만 많고 원래 해오던 도시 개발과 다름이 없어도, 결국엔 로마나 아테네를 능가할 것이라고 한다. 벌써 3단계를 지나고 있는 사업의 핵심은 월정교, 월성 등 유적의 복원, 문화관 건립, 고분공원 설립 등 여전히 조형물과 부대시설이 전부이다. 역사·문화·관광도시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한다는 의도와는 달리 경주의 상징 불국사 앞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경주 도심은 사업을 시작할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불국사 앞에 들어선 아파트단지

 

 

물론 관광객을 위한 시설 확충과 관광자원의 설치는 관광의 핵심요소인 객체와 매체가 되므로 분명 중요하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새로운 조형물이 생겨났으니 단순히 방문 증대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시 전체보다 지엽적인 인공 자원만으로 기존의 경주가 하루아침에 로마와 같은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은 매우 안이하게 느껴진다.

 

최근 경주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 중에 하나는 카페가 즐비한 황리단길이다. 이처럼 전주 한옥마을, 북촌 한옥마을처럼 관광객은 체험할 수 있는 테마파크 같은 분위기를 원한다. 구도심과 신도심이 전혀 구분되지 않고 고분 주위에 질서 없이 늘어선 빌라와 현대식 건물들을 보고 경주만의 특별함을 느끼기는 어렵다. 불국사 코앞의 아파트 대단지는 거창하게 시작한 사업이 손발이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을 상징처럼 각인시켜주었다.

 

 

 

황리단길

 

 

건축물은 활용되어야 한다

신라의 상징이었던 황룡사 9층 목탑의 복원은 정확한 원본 데이터가 없어 추측을 통해 '신축'을 계획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문화재학에서 공식적인 복원의 개념은 기존의 파손된 잔해와 재료를 바탕으로 한 '재조립'이고 유네스코에서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다지 진척이 없다.

 

 

 

황룡사 모형 (국립경주박물관 전시)

 

 

화려하고 견고하게 느껴지는 일본의 다수 성들은 오래된 것 같지만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축한 것이다. 역사적인 목조 건축물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현재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을 정도로 복원의 개념과도 거리가 먼데도 각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아 일본 이미지 메이킹의 심볼이 되고 있다.

 

경주의 호텔들이나 주요 공공 건물들은 애초에 장기적인 도시미화 계획을 갖고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떠 만든 보문단지의 중도타워처럼 지었어야 했다. 민간에서도 저렇게 역사적인 건축물을 재현하여 칭송을 받는데, 예를 들어 근래 지어진 공공 신축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는 그 기회가 있었음에도 현대적인 모습으로 지어져 상당히 아쉽다.

 

 

 

황룡사9층목탑을 본뜬 중도타워

 

 

세계적인 관광도시들은 사람들이 주거하는 곳까지 도시 전체의 건축물이 컨셉을 유지한다. 문화는 곁에서 사용하고 소비되어야 하는데, 일부 카페나 한식당 말고는 고풍 있는 건물을 잘 짓지 않고 쓰지도 않는데 유명한 역사 도시들을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몇 안 되는 작은 기와집 때문에 황리단길이 명소가 되었는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경주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축물이 자리 잡은 거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황리단길

 

 

 

교촌마을

 

경주의 테마파크화

관광객이 경주에 첫발을 내딛을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완벽히 경주만의 색다른 공간을 만들어내 천년고도를 느끼는 판타지적인 공간이 된다면, 관광객은 잠시 들렸다가 몇 군데만 보고 가는 유적지 탐사 여행이 아니라 자신이 살던 곳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에 와서 온가족이 머물다 가는 체재형 가족여행지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생긴다. 경주관광이 체질적으로 변화하려면 도심 전체가 기와로 가득 찬 테마파크가 되어야 한다.

 

 

 

월성과 황룡사 주변은 수십년째 발굴 조사중이다

 

 

이러한 테마파크화는 황룡사 재건립과 월성 복원부터 필수불가결이다. 기존의 도심은 사유지라 바꾸기는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선 월성, 동궁, 황룡사로 이어지는 모든 부지를 특구로 지정하고 신라식 건축물로 장식되어야 할 것이다. 

 

경주를 대표하는 여행지가 역사 컨텐츠가 있는 도심이 아니라 보문단지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무너져 없어져 버린 자리 그 자체도 역사라면서 수십, 수백 년 동안 빈 땅으로 놔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문가를 빼고 누가 지금 그곳을 보러 가기나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개발과 복원의 개념 논쟁으로 지지부진할수록 경주는 개성 없는 아파트와 빌딩으로 메워지면서 역사도시, 천년고도라는 타이틀은 퇴색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황룡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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