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라고?
내가 할 말을 왜 저들이 할까. 당신들이 뭘 입든 뭘 하든 관심이 없는데 왜 어쩌라면서 하루 종일 광고에 나오는지 볼 때마다 지친다. 내 본능은 눈을 돌리고 화면을 손으로 가리고 채널을 바꾸게 되는데 뭘 어쩌라고.
좋다, 싫다는 원초적인 감정은 개인의 자유다. 인간의 DNA는 더 나은 유전자를 찾아 번식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이러한 본능을 무분별하게 절제하지 못한 행동이 문제인 것이지, 개인의 감정 및 주관과 내면의 가치판단까지는 제한할 방법이 없으며 누구도 심판할 자격이 없다.
내 기준에는 남성성이 뚜렷한데도 여장하는 것, 고도 비만인데 심한 노출을 하는 행위, 그로테스크한 성적 복장 등은 본능적 거부감이 든다. 그것이 직접 눈앞에 있든, 예술이든, 영화, 사진, 광고이든 간에 상관없으며, 다름은 인정하지만 호불호 결정의 몫은 나의 것이다. 그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혐오감을 표현하지도 않고, 그들에게 돌을 던지지도 않지만, 결코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이런 방어적 자세가 어떤 선제적 트러블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개인의 미적 기준은 강제로 학습되는 것이 아닌데, 다수를 가르치려 하고, 받아들이라고 하며, 자신들의 말이 정답이라며 세뇌 수준으로 강요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개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하기 싫은 것에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혐오도 아니고 차별도 아니다.
싫으면 그냥 싫은 것이지, "왜 싫어해?" 라고 따져 묻는 것은 더 끔찍하다. 정확하게는 소설 1984의 전체주의 정부처럼 개인의 내면 의식까지 간섭해서 잘못한 것, 나쁜 것으로 단정 짓는 PC주의자들의 압제적인 자세가 문제라고 본다. 그들 또한 싫다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가해자들이며, 그런 의미에서 아래와 같은 패러독스에 빠져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고정관념
정의로운 불의
무차별한 차별
평등을 위한 불평등
감정의 전체주의적 강요
1994년과 2011년 우리는 재방송을 틀어놓은 것처럼 똑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그들의 수령이 죽었을 때 2500만명 모두가 한결같이 슬퍼야 했고, 세계는 그 광경을 트루먼쇼처럼 새삼 경이롭게 감상했다.
그들은 원통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지 본능적인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 개인의 감정까지 감시하고 제어하는 소설 속 디스토피아 세계를 북녘 땅에서는 첨단 기술 없이도 완벽히 실현한 것이다. 이런 전체주의 세계야 말로 똑같은 감정과 가치판단을 주입하려는 과격한 자들이 원하는 political correctness의 궁극적인 이상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 차원에서 주로 하는 말이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호불호는 내 감정의 영역이고 당신과 나는 다른 사람이다. 다른 것을 틀렸다며 강요 및 집착하지 말고,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잘 어울렸으면 싶다.
이렇게 저 문구는 기이하게도 정반대의 스탠스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똑같은 충고를 적용할 수 있다. 왜 이런 소통의 오류가 발생하는가 생각을 해보니 이들은 싫다는 표현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다름은 이미 인정했고 네 마음대로 해라.
그것에 대해 좋고 싫고는 각자의 자유이다.
관심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조차 폭력이 될 수 있다.
남의 사상과 행동은 별 관심이 없고 민폐나 범죄가 아닌 이상 개인의 자유이니 마음껏 표출해도 뭐라고 안 하는데, 제발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강요는 파시스트, 극단주의자들이 주로 하는 행동이자 사상의 전파 방식이며, 사회적인 마찰과 충돌을 유발하고, 분열과 전쟁의 씨앗이 된다. 인류는 이미 서로에게 강요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세계대전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으며, 이를 다시 망각해서도 안 된다.
도덕적으로 우월해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남의 가치관까지 구속하고 억압하는 행위는 설령 순수한 의도라 하더라도 거부감이라는 역설로 다가온다. 단지 바라는 것은 서로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똘레랑스를 발휘하고, 각자의 호불호 의사표현은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세상을 원할 따름이다.
GIVE ME LIBE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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