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기업가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만 보면 무리한 차입과 안전을 도외시한 무모한 공기단축으로 실패한 사례의 귀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금수저에 든든한 정재계 연줄과 자본을 가지고도 주인공은 실패했고, 선대 회장을 닮아서 추진력이 있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준 점은 신선했다.
급속도의 경제성장으로 IMF를 겪은 한국이나,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처럼, 현실 경영에서도 말이 좋아 추진력이지, 그 추진력이 낳은 똥을 치우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할아버지 밑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아버지는 아들의 저돌성을 경계하고 일깨우려 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도 든다.
만들어라 팔릴 것이다
경영자는 이런 무대포(むてっぽう, 無鉄砲) 정신만으로 일사천리 진행부터 시키고 보는 무모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은 극중에서도 주인공에게 예측 가능하고 정량적인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오라는 것과 같이 은연중에 계속 표현된다. 재량을 뛰어넘는 도전을 할 때나, 중대한 위기 때마다 아버지의 지원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재벌 3세의 안이한 경영마인드에 대한 경종이다.
IMF 상황에서도 사업을 확장하다가 위기가 닥치자 정부의 지원만 바라보고 있던 대우그룹이 오버랩되는 것이 지나친 비약일지는 모르겠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악역이 뒷 공작을 펼쳐서 당한 결과라 억울해 보이지만, 현실 경영에서는 이보다 더한 대외 변수와 협잡이 판을 치는 경우가 충분히 존재하며, 화려한 성공 신화의 이면에서는 수많은 리스크와 실패를 감내하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주인공 만표 텟페이의 배경
1. 재벌 가문 번창의 사명감을 가진 워커홀릭
2. 정계 거물인 장인이 아들처럼 여김
3. 주인공의 가능성에 미래를 걸었다며 언제나 마니또처럼 도와주는 은행장 친구
4. 친서민적 행보로 노동자들의 진심도 얻음
5. 경쟁자인 동생도 선한 마음을 가져서 형을 적으로 돌리지 않음
6. 막장 집안에 무일푼이라도 언제나 믿어준다는 아내
7. 훼방꾼 아버지의 심복의 양심까지 흔들어 우군으로 만듦
이 정도면 주인공은 일생일대의 사업인 일관제철소를 완성시키고도 남을 조건이며 명랑극 성공방정식대로 끝내도 되지만, 질투에 눈이 먼 아버지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방해로 인해 허무하게 실패하는 것이 반전적 스토리라인이다.
드라마 '영웅시대'나 '국희'처럼 경제성장기 시대극은 꿈과 이상을 가진 선역이 최후에 승리했지만, 화려한 일족의 산업화 영웅은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완벽히 좌절, 무산되었고 이 점이 오랫동안 찝찝한 기억을 남게 한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싸움을 부자 관계로 치환해서 만든 흥미로운 진행인 줄 알았는데, 막장드라마식 출생의 비밀로 가버렸지만 그것이 전화위복으로 전형적인 성공 클리셰를 깨는 장치로 활용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볼 수 있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갈하이와 현실의 언더도그마 (0) | 2022.09.01 |
---|---|
알포인트 vs 남극일기 (0) | 2022.08.24 |
한자와나오키 리메이크 가능할까 (0) | 2022.06.19 |
독재자 지망생을 위한 책 [독재자의 핸드북] (0) | 2022.06.15 |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 우아한 세계 (0) | 2022.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