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자와나오키 리메이크 가능할까

moonstyle 2022. 6. 19. 15:10
반응형

21세기 일본 최고의 인기 드라마 한자와나오키는 2013년 시즌1 이후에 무려 7년 후에 내놓은 시즌2도 대히트를 치면서 한국판 리메이크에 대한 말들이 오고 갔고, 2020년 SBS에서 판권 협상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아직까지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이야기의 주요 흐름과 맥락이 일본 버블 붕괴 - 은행들의 실적 악화 - 메가뱅크 합병 - 그로 인한 파벌싸움이 핵심적인 뼈대가 되기 때문에 리메이크 시간이 늦어지면 왜 저렇게 파벌들이 구태의연하게 싸우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감소할 것이다.

 

 

 

일요극장 한자와나오키 (2013, 2020) ⓒTBS

 

시대적 차이

한국에서도 IMF 이후 은행권의 살벌한 구조조정이 있었고 여러 인수합병을 거쳐 지금의 4대 은행 체제로 굳어졌으므로, 한자와나오키의 스토리와 상통한 부분이 많다. 그중 모 은행은 한자와나오키의 도쿄중앙은행처럼 거의 1:1에 가까운 합병으로 배경이 상당히 유사한데, 구 S은행과 H은행 출신 간에 파벌 싸움이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고, 드라마처럼 한쪽 은행 출신이 행장을 계속 이어서 하게 되어 반발이 있다거나, 계파 갈등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IMF로 인한 명운을 건 합병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파벌, 위계질서 등 재밌게 적용할 수 있는 요소는 한국에서도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한국판의 경우 가장 적당한 입행시기는 IMF 직전이자 한국판 버블의 정점인 1996년쯤 될 것이지만, 주인공이 대졸 신입으로 최대한 빨리 25살에 입행했어도 지금 나이가 50 이상으로 최소 임원급이 되어, 현재로는 시점이 맞춰지지 못하므로 융자과장인 주인공이 스마트폰 시대 이전에서 활동하는 시대극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직장인들 시청 타깃으로 하는 현재의 현실적인 공감대적 요소가 상당히 반감된다. 더군다나 2020년대는 '꼰대' 세대 대부분이 은퇴할 것이고, 노동유연화에 적응된 현재 세대들은 구태의연한 조직 파벌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상당히 희석되었을 것이다. 이제 세대가 바뀔수록 파벌 따위는 와해되고도 남고 공감도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드라마 배경인 도쿄중앙은행 ⓒTBS 한자와나오키 공식 트위터

 

배경 문제는 애초에 일본 드라마가 너무 늦게 나와서에서 출발한다. 시즌1의 시기도 늦었기 때문에 주인공의 나이를 조정한데 까지는 좋았는데, 시즌2가 나오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을 허송한 것이다. 여담으로 시즌2에서 주연 사카이 마사토가 배경에 비해 늙어버린 모습과 부장으로 진급 좀 시켜주지 하는 생각, 그리고 은행장이 퇴임해서 나갈 때까지 주인공을 조직개혁에 이용만 하고 무심하게 떠나는 씬으로 마무리한 점 등이 아쉬웠다.

 

 

문화적 차이

리메이크에서 가장 큰 난관은 문화적 차이다. 먼저 사죄를 위한 최대한의 퍼포먼스인 '도게자(土下座)'로 인해 주인공이 복수를 결심하고, 상사에게 그것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주는데, 문제는 이 '도게자'에 대해 한국에 대체 가능한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람에게 절하는 것은 조의를 표하는 상가집에서나, 공경의 의미로 하는 세배가 거의 전부이며 사회생활 중에 무릎을 꿇을 일도 없다. 인생의 숙적에게서 깔끔하게 절을 받아야 하는데 도게자가 있는 일본에서도 클라이맥스 상황이 좀 신파적이고 억지스러운데 한국이라면 더욱 비현실적이 된다.

 

 

 

최대한의 사죄표현 도게자

 

 

또 하나, 한국에서 출향(向: 징계 및 좌천성 전출 인사)이라는 공식 제도 자체가 없고, 은행에서 고객사에 고정 파견사원을 내보내지도 않으며, 드라마와 같이 직무 능력과 무관한 인사 철퇴를 휘두르다간 우수 인재를 경쟁사에 갖다 바치는 광경을 손가락 빨면서 보게 될 것이다. 일본의 평생직장 개념과, 전체주의적 관료조직, 집단 따돌림 문화, 고도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어 그런지 몰라도, 한국의 빈약한 고급 인재풀과 재취업 시장을 볼 때 직장 내외의 인사 시스템은 은행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그렇게 개인이 아예 찍소리도 내지 못할 만큼 정교하지는 못하다고 본다.

 

도게자와 출향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인데, 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는게 치명적인 맹점이다. 한국판 리메이크를 한다면 전체적인 구조와 극적인 요소를 갖다 쓰되, 디테일에서는 아예 다른 드라마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배경부터 예를 들면 2008년 리먼 사태 이후로 하고 그로 인한 금융위기로 가상의 은행 둘이 합병했다는 설정도 좋을 것이다.

 

 

 

'얼굴씨름' 드라마로 불리는 한자와나오키 ⓒTBS

 

제작환경의 차이

무엇보다, 갈수록 리메이크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게 가장 큰 문제이다. '리갈하이'같이 철학과 재미를 함께 담아낸 인기작을 가져와서는, 정체불명의 장르로 변형시키는 것이 한국의 TV 드라마 제작 방식이다. 소재 고갈에 창의성도 없으니 적당히 해외 작품 판권 사 와서 재해석은커녕 원작 해석도 못한 채 뜬금없는 사랑타령 넣고 비빔밥식으로 섞어 내놓으면 통할 줄 아는 한심한 마인드의 연출진, 수준 낮은 작가 때문에 리메이크가 꺼려진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하얀거탑' 수준이 아니라면 안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현지화와 재해석이 제대로 되면 리메이크작은 원작의 진화가 될 수 있지만, 한국 공중파 TV의 주 시청타깃은 다르고 여론 입김이 많이 작용해서 졸작이 되거나 별다른 반향 없이 끝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실제로 판권을 사서 제작을 한다면, 차라리 소재나 연출에서 좀 더 자유로운 OTT 오리지널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