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알포인트 vs 남극일기

moonstyle 2022. 8. 2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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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만 다를 뿐 사실상 구성이 똑같은 두 영화

 

 

금단의 영역에 호기롭게 갔다가 예전에 그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들과 같은 전철을 밟아 하나둘씩 제거되거나 자멸하며 결국 대원 전체가 증발해버리는 매우 비슷한 플롯의 두 영화지만 흥행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지를 받았다.

 

알포인트는 저예산임에도 밀리터리 공포물의 대표작에 등극한 반면, 남극일기는 최근에 재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블록버스터급의 예산을 들였는데도 평단과 관객에게 괴작 내지 졸작 취급 받으며 돈을 어디에다 쓴지 모를 것 같은 영화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연출의 기술적 요소마저 흡사하다

 


비슷한 발상으로도 디테일과 연출 역량에 따라 천양지차를 보인다는 점도 있지만, 알포인트에 비교해서 남극일기에서 유독 돋보이는 단점은 치밀함과는 거리가 먼 산만한 전개에, 눈보라 속에서 덜덜 떨면서 중얼거리는 대사들이 전달조차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작위적인 이벤트와 무의미한 복선, 인물들의 비중이 안 그래도 유동적인데 맥락 없이 일삼는 기행은 서사의 구조적인 면에서 관객의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왜 갑자기 그런 씬이 나오는지 감정이입부터 되지 않는데 배우들의 아쉬운 연기력과 세기초 어설픈 CG까지 물음표에 한몫 거들며 공포스럽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미스터리하지도 않은, 장르 불명의 흐지부지한 인상이 강하다.

 

설원 밖에 보이지 않는 극한의 환경에서의 고립과 백야현상은 인간의 정신병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데, 구성원들이 심리적 카오스에 빠져 자멸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렸다면 웰메이드 미스터리 공포물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좋은 소재를 가지고도 산으로 가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맥락없이 등장하는데다가 공포와도 거리가 먼 호러 씬 (남극일기 스틸컷)

 

 

대낮에도 소름돋는 장면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알포인트

 

 

반면 알포인트는 귀신, 혼령이 놀래키는 기존 공포영화의 상투적인 연출에서 벗어나, 사면초가에 빠진 인물들이 미지의 존재로부터 서서히 옥죄어오는 심리가 관객에게 잘 투영되어 끝까지 몰입감을 선사한다.

한가지 옥의 티는 '전설의 고향'급의 소복입은 귀신이 끝내 등장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감독이 전통적 공포영화 흥행공식을 어느정도 의식한 결과로 보이는데, 그냥 끝까지 관객의 상상력을 유지했다면 공포감을 극대화하면서도 극적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군대에서 알포인트를 보고나서 야간 경계근무를 나가기 무서웠다는 증언이 많았는데, 그만큼 군필 남성 관객의 버프를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반면, 남극일기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수 없는 이질적인 설정을 계속 안고 가야 했다.

 

 

"넌 날 멈춰줬어야지" - 실컷 광기어린 기행을 일삼다가 마지막에 뜬금없는 개소리를 시전하는 주인공. 나름 대미를 장식하는 명대사라고 넣은 것 같은데, 최도영(송강호)과 김민재(유지태)에게는 극한의 상황에서 저런 말을 읊을 정도의 정서적 유대감이 극중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김민재는 다른 대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최도영의 치명적인 과거도 극 후반에야 알았을 정도이다.



눈을 넘치게 퍼담아서 녹여도 물은 냄비를 채우지 못한다. 남극의 눈만큼 많은 것을 영화에 담아 녹여내려 했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인지 결국 의도한 것의 십분의 일도 담아내지 못했다. 남극일기가 공포도 미스터리도 아니라면, 차라리 독선적 인물의 집착이 사이코패스적 광기로 진화하는 과정을 그린 빌런의 프리퀄 성장영화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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