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독재자 지망생을 위한 책 [독재자의 핸드북]

moonstyle 2022. 6. 1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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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저 "The Dictator's Handbook"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권력을 잡는 방법과 유지 비결을 우화로 매우 알기 쉽게 비유한 입문서라면, 이 핸드북은 구체적 사례와 분석을 통해 실증하는 심화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를 통해 권력 생태계를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이 필요 없을 수 있다. 독재자 코스의 우등생들은 본능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비상한 두뇌를 지녔다면 자신만의 사고실험을 통해 궁극적인 실패 확률을 현저히 낮춘다.

 

 


완벽한 독재자는 정책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으나, 전략적으로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이나 대약진운동을 심도 있는 고찰 없이 일차원적인 판단과 착오로 결정하여 인민의 삶을 파탄 냈지만 그는 지금도 자국민에게 추앙받고 있다. 김정일의 기획작은 항상 실패했고 존속을 위협하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시켰지만 영원한 국방위원장 시호를 받았다. 쿠웨이트 침공 실패로 절멸 직전이었던 사담 후세인도 핵심 지지층인 충성파 때문에 계속 대통령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선출인단 이론 (Selectorate Theory)


그들의 공통점은 의심이 많다는 것이다. 언제 누굴 의심해야할지 정확하게 알고 송곳처럼 파고들며, 딱 충성심을 유지할 정도로만 보상하면서 핵심집단(승리연합)을 관리한다. 권력은 불만 많은 대중이 아니라 이 소수의 핵심 구성원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달려있다. 이것이 90년대부터 붕괴된다고 했던 북한이 지금까지도 잘 버티고 있는 증거이다.

 

독재자는 돈의 흐름을 움켜쥐고 이 소수의 "승리연합"을 구성하여 그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권력을 영구화하는데, 그 소수 중에 불순분자나 토사구팽 할 인물들을 끊임없는 의심으로 걸러내며,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도록 그 밑에 "실질 선출인단"을 최대한 많이 확보한다. 클렙토크라시(도둑정치) 기반의 이런 피라미드만 완비된다면, 하층민의 불평불만이나 전쟁, 정책의 실패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책에서는 알려주고 있다.

 

 

 

선출인단 이론(Selectorate Theory)을 피라미드로 만들어보았다

 

 

실패는 승리연합에서 시작한다


외부세력에 의한 국가의 멸망이 아닌 이상 핵심집단에 난 사소한 구멍을 메우지 못해서 트리거 하나로 봇물 터지듯이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잘 알기에 늘 칼을 품으며 자신의 권력기반인 승리연합을 경계하고 초조해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은 망상과 의심으로 주변인과 믿음직한 심복까지 숙청을 밥먹듯이 했고, 말년에는 독살당할까 봐 의사들까지 숙청해서 미로 같은 비밀별장에서 한참을 발견되지 못한 채 쓸쓸히 죽었다.

 

다른 포스트에서 다룬 '궁예의 몰락' 과정에서도, 역사적으로는 혁명으로 기록되었지만 왕건을 위시한 승리연합에게 당근을 제때 주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에 더해 왕건은 아예 죽다 살아났는데, 아마 스탈린이라면 죽였을 것이다. 스탈린이 천수를 누리다시피 한 것을 보면, 권력의 세계에서는 혁명인지 아닌지가 굳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의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저자는 꼭 전제정치가 아니더라도 민주주의나 그 어떤 체제에서도 권력 형성과 유지의 메커니즘 자체는 같다고 말한다. 문화와 방식의 세련됨의 차이로 변별력이 발생하지만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심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 정치인의 20년 장기집권 플랜도 정치공학적으로는 그리 어불성설이 아니었다고 이해된다.

민주주의가 잘 갖춰진 나라에서는 인권과 도덕성에 대한 필터링이 작용하고, 경제와 대외 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아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서 문제인데, 반대로 일반 국민에게는 그런 촘촘한 필터링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적나라하게 파헤친 집권과 권력의 구조, 테크닉과 스킬을 잘 파악한다면, 그들의 행동양식만 관찰하더라도 지지하는 세력에 대해 맹종할 것이 아니라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정신적, 사상적인 유대감으로 무장되었더라도 권력 앞에 선인은 없으며, 누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고 무소불위의 자리를 노린다는 점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대명제를 국민 스스로가 지켜나가지 않으면 언제든지 피바람을 몰고 오는 독재자는 출몰하게 되어있고, 그와 승리연합의 부귀영화를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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