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플래툰과 현실의 국제관계

moonstyle 2022. 6. 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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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정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최선이다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은 세계경찰을 자처하며 반민주, 반인권세력에 대한 응징을 통해 평화와 공영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같이 표면적으로는 아름답고 정의로운 슬로건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몰락한 세계 제국들과 달리 미국은 직접 지배보다 안정적 교역로의 확보를 통한 경제·문화적인 간접 지배 또는 영향력 행사에 주력한 결과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여러 사람들이 비웃으며 '자국의 이익 때문에 움직였을 뿐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나라는 세상에 없고 그렇지 않다면 국가로써의 자격 상실이다. 내막이나 의도야 어찌됐든 굳이 그들이 이타적이었다고 순진하게 생각하지도 않아도, 최강자 미국의 이러한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자본주의 전파 방식으로 그 우산 아래에 있는 시민들이 수혜를 입은 것은 사실이며 긍정적 영향력을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내막이 어찌됐든') 대화를 우선하고 도덕적인 가치를 앞세우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인 것이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를 상대할 수 있다는 미국의 국방력에 중국이나 러시아같은 전제 정권이 들어선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재앙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

 

정의와 현실은 타협하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도덕적인 정의관과 현실 사이의 패러독스가 잘 투영된 것이 베트남 전쟁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말처럼 세계 질서를 선도하고자하는 정의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전쟁 비용 사이에서 우물쭈물 하다가 출구전략을 걱정하는 한심한 모습 때문에 세계 각지의 게릴라에게 초강대국도 어쩔 수 없다는 교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로인해 이후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결과도 동일선상이 되어버렸는데,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독재의 폭압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정의는 소득없는 현실을 완전히 이길 수는 없었고, 베트남전과 아프간전을 통틀어 결국 정의와 현실은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플래툰(1986)

 

프래깅 (Fragging)

 

승패가 아니라 출구전략이라는 용어 자체가 목적없는 전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고, 전투를 수행하는 일선에서는 혼돈 그 자체가 된다. 장기 판에서 승리라는 목표없이 장기 말이 할 수 있는 일은 살아남는다는 과제 밖에 없으며, 애국심과 희생정신으로는 더 이상 서로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급기야 베트남 전에서는 사병들이 장교의 막사에 수류탄(Frag)을 던져 적에게 전사한 것처럼 꾸민다는 의미의 프래깅(Fragging)이 벌어졌는데, 영화 플래툰은 감독의 베트남 참전 경험을 통해 그 막장 상황을 그려냈다.

 

가망없는 전쟁에 불가항력적으로 투입되어 전투에 승리해야하고, 민간인과 적을 구분해가면서, 아군을 보호하는 동시에 전쟁범죄를 단속하는 것 자체가 모든 임무 수행자들에게는 심리적인 공황상태를 부여한다. 워싱턴 정치인들의 딜레마가 일선 전장에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최선이라 느낀 장병들은 서로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는 프래깅으로 내적 혼돈을 폭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 전쟁과 영화 플래툰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실의 국제 관계

 

전쟁에 발을 한 번 들이면 몰락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반면교사 때문에 현재 서방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고,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전쟁의 장본인 러시아는 물론 전세계 시민들에게는 무엇보다 이 전쟁이 장기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안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에너지, 원자재, 곡물 등은 전쟁으로 인한 수급 요인으로 요동치고 있고 세계는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대공황의 재현에 대한 공포에 떨고있다.

 

QUAD의 일원인 인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러시아 원유를 적극 수입하고 있고, EU 내에서도 제재조치와 금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 등,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상대하는 방식에서부터 세계는 삐걱대고 있다. 돈 줄을 죄고 금수 조치를 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푸틴 때문에, 출구전략은 러시아가 아니라 서방이 걱정해야 할 판이다.

 

러시아 상대로 정의구현이라는 목적이 달성될 수 있을까. 사자를 바라보는 얼룩말 무리들은 내심 크름반도 사태처럼 하나가 적당히 물어뜯기고 빨리 끝나길 바랄지 모른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처럼 우크라이나 사태의 종전을 원하는 모든 구성원들도 정의와 현실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다가 러시아가 원하는 프래깅이 발생할 수 있고, 전범 제재보다 경제위기라는 현실이 급박한데도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조짐은 가시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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