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 왕조와 지배층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세계 각지의 중세시대가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고, 조선 중후기에 이르자 사대부의 권위도 자연스레 떨어지기는 했지만,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를 맞이한 유럽은 제쳐두더라도 바로 옆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이씨 조선은 지금의 김씨 조선처럼 극도의 폐쇄성으로 시대적 변혁의 여지를 철저히 차단해서 기득권 유지에만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국운이 어찌 되든 말든 사치와 매관매직을 일삼는 것을 보다 못해 들고일어난 백성을 때려잡으려고 외국 군대를 동원하고, 피지배층이 수탈과 강제징용으로 끌려갈 때 왕족은 나라를 넘기는 대가로 호의호식했다는 사실에서는 동정의 여지도 없게 만든다.
조선의 기와집은 양반가의 겸손함이 묻어 나온다고 자화자찬한다. 나는 그것을 미개함 또는 위선이라고 쓸 것이다. 하층민 착취만을 몰두하는 지배층의 집의 규모가 생각보다 초라한 현실적인 이유를 자연과 어우러지거나 검소해서 그렇다고 순진하게 믿기는 불가능하다. 염색 못해서 흰 옷만 입어놓고 평화와 순수함을 추구해서 백의민족이라고 '국뽕' 맞는 것과 동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권력가도 조선의 경제력과 기술력으로는 정원 하나 마련할 공간 없는 아기자기한 집이 최대치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한결같이 행랑채는 여러 칸으로 넓게 자리하고 있는데 노비를 가축처럼 키우는 노동력 착취를 위한 공간이다.
어느 고택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며 구휼미를 푼다는 뒤주가 있는데, 나는 이것을 양반들이 만인의 주식(主食)이자 실질적인 화폐의 기능을 담당하는 쌀을 독점하는 주제에 뒤주 쌀 찔끔 준다고 대단한 은혜를 베푸는 척하는 가스라이팅으로 평가하고 싶다.
정말 그랬다면 너도 나도 와서 쌀 다 퍼갔을 텐데 계속 찾아오면 두들겨 패서 내쫓았을 것이다. 대문 앞도 아니고 집안 구석에 있는 걸 보니 읍소라도 해야 줄 것 같은 생색용 설정으로 느껴진다. 더군다나 대를 이어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지주 입장에서는 그들이 여신 고객들인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살아있는 편이 낫다.
궁핍한 이웃들을 배려해서 밥 할 때 굴뚝으로 나오는 연기가 안 보이게 기단 밑에서 마당으로 연기가 나오게 했다는 설명을 듣고 박장대소했다. 소작인과 노비 수십 가구를 부리면서 이자놀이하고 사는 것 자체가 박탈감 주는데 혹시나 죽창 맞을까 봐 눈치 보는 꼴을 저렇게 미화하다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밑으로 나오는 연기는 날파리 모기 쫓고, 목욕도 머리도 안 감아서 더러운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소독 역할하도록 놔둔 것으로 보이며, 애초에 굴뚝도 제대로 못 만들 것 같다.
유지보수에 꾸준히 공을 들여야 해서 일 년 내내 손이 많이 가고, 흙으로 지어 내구성이 형편없으며, 공간을 넓게 하려면 그만큼 지붕이 높이 올라가야 하고 하중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실질 생활공간은 작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전원주택으로 운치있는 전통 한옥을 선택했다가 건축비는 몇 배가 드는데 실 평수가 나오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경우도 더러 봤다.
오늘날 한옥을 기와집으로 알고 있는데, 대부분의 한옥은 초가집이었고, 현대인에게는 선사시대 움막처럼 보일 이 초가집을 조선시대를 넘어 새마을운동 전까지 생활했다. 잘 때 천장에서 떨어지는 쥐, 뱀, 지네, 온갖 해충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주택 문화라고 칭송한들 코웃음만 나온다. 오죽하면 김일성이 기와집 보급을 공약으로 내세웠을까.
범죄자나 전쟁노예도 아닌데 고작 출신성분에 따라 극도로 차별하고 구조적으로 개혁의 가능성을 수백년 동안 철저히 차단한 지배층의 겸손과 청렴 따위에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경제력과 건설기술이 모자라 최고의 권력자가 가진 99칸 대저택이라는 기와집의 수준이 명성에 비해 초라한 것도 칭찬할 이유가 없다. 그럼 세계 최빈국의 지도자가 불철주야 인민들을 걱정하며 보리밥에 간장만 먹고 산다는 말을 믿어야 하나.
이제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마치 결혼을 간절히 바라는 노총각 노처녀의 처지처럼, 조선은 할 수 있었는데 안 한 것이고 그러다 보니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게 되었다. 한옥의 토속적인 정취에 심미감을 가질 수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현실적인 생활공간으로는 비효율의 극치이며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위선의 상징으로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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