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북한에는 강경파가 없다

moonstyle 2022. 8. 1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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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영화, 소설 등 픽션이나 역사물, 심지어 공신력 있는 보도 취재 영역에서까지 북한 체제의 속성과 본질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인데, 마치 권력공동체가 있는 것처럼 권력 실세가 군부 강경파라는 한심한 추측과 묘사를 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일성 김정일의 반세기에 걸친 철저한 숙청작업과 감시체계로 북한 권력구조에는 XX파, OO파와 같은 세력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강경파가 대외에 존재를 드러내어 전면에 나선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하나도 없을뿐더러, 설사 간혹 보이는 사람들은 사후 지도자의 책임회피를 위한 총알받이 역할일 뿐이다. 강경세력 중에 우두머리가 추대되는 것이 아니라, 우두머리의 시나리오를 실행하는 강경파 역할의 페르소나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내외 정책, 강령에서부터 사소한 제스처까지 모든 사안은 지도자의 머릿속에만 있고, 그의 지시에 따라 2500만의 충성스러운 연기자가 로봇처럼 움직이고 연극하는 구조가 북한 체제의 본질이다. 사육된 연기자에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결정적인 권한이 아예 없으며, 매파니 비둘기파니 설정하는 것은 논할 가치도 없는 자본주의 소설가의 작품이다.

 

 

 

화폐개혁 담당자가 총살당했다는 소식에서처럼 거대한 트루먼쇼에서는 지도자의 실책을 떠안고 희생될 역할까지 다 정해져 있다. 출연자들은 암기력과 연기력만 갖추고 정해진 플롯 안에서 행동하면 되는데, 괜한 생각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연출자의 심기를 건든다면 장성택처럼 그대로 이 세상 쇼에서 하차하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이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강경파나 온건파, 권력실세가 실재했다면 북한의 세습구조는 몇 번이고 붕괴되고도 남았다.

 

백두혈통 가족조차 역할극에는 예외가 없지만, 유일하게 자유로운 사상관을 드러내며 경계선에서 외줄 타기를 했던 존재가 김정남이다. 선친의 유훈도 무시하고 국제관계적 리스크마저 무릅쓰며 암살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이 쇼는 계속되어야 하는 사명을 지닌 것이다.

 

 

북한에는 '자유'라는 단어 자체가 쓰이지 않으며 사전에는 방종보다 더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만큼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며, 북한 체제를 파악할 때는 민주주의적 상식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존재 자체가 비정상인 북한을 상대로 강경파 온건파 따위의 하찮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전에 차라리 사이비종교에 대입하는 편이 이상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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