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는 그래도 식자층에 속하는데, 그중 어떤 교수가 "교수님한테 언제든지 물어봐", "교수님이 볼 때는" 하며 스스로를 계속 "교수님"이라고 자칭했다.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한 나르시시스트인지 아니면 예의라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강의를 들을 때마다 계속 거슬렸고 그 사람을 저절로 피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부터 이어져온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피아에 대한 구분과 지칭에 대해 아이들이 체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므로 교육상 그럴 수도 있다고 보지만, 고등교육에서도 당연하다시피 "선생님"이라고 자칭하는, 그것이 낯 뜨거운 것인지 모르는 교사들이 꽤 있다.
교육과정에서부터 스스로를 높이는 이상한 표현이 당연시되다 보니, 보고 배운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본인을 "OOO과장입니다", "XXX팀장입니다" 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게 된다.
아예 TV와 같은 공신력이 발생하는 매체에서조차 게스트로 초빙된 저명인사들이 한결같이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한다는 것이고 아무런 지적이 되지 않고 있다.
안녕하세요. 홍길동 변호사입니다.
소통전문가 임꺽정 박사입니다.
저는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장길산 선수입니다.
TV에 나온다고 있는 힘껏 예의는 다 차려놓고는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본인을 소개할 때는 군대의 관등성명처럼 직함, 직책 등이 이름 앞에 와야 한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직함을 이름 뒤에 넣어 말하면 높이는 표현이라고 하며, 스스로를 칭할 때 사용하는 것은 언어 예절에 어긋난다고 설명한다.
이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꼰대가 아니라 당사자가 언어 표현과 예의, 상식에 있어 무지한 것이다. 그리고 위신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상대방에게 얕보이기 싫고 이렇게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심정도 저변에 깔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든, 국제 외교에서든 언어 예절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며, 초면에 본인 스스로를 높이는 것은 굉장한 실례이다. 특히 인접한 해외 국가의 바이어에게, 또는 공식 석상에서 이런 식으로 자기소개했다가는 안 좋은 선입견을 부여받을 수도 있다. 자신의 직업이나 직책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무례한 것은 오히려 체면을 깎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지해 보이는 현상도 점차 당연시되어 훗날에는 압존법과 함께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식으로 변형된 대표적인 예가 앞서 언급한 "선생님"이다. 원래 한 분야에서 업적을 이루거나 학예가 뛰어난 사람에게 "선생께서는~" 하며 존칭하는 방법이었는데,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중복으로 "님"까지 붙여서 여기 저기 다 갖다 쓰다 보니 흔하디 흔한 2인칭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이런 식으로 이중으로 갖다 붙이거나 온갖 직책 직위 직급 직함에 무분별하게 "님"자를 붙이는 것은 오히려 격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사례가 되며, 왜 그들이 스스로에게까지 "선생님", "교수님"이라고 뻔뻔하게 자칭하게 되었는지 언어의 변형과 훼손적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존댓말이 철저한 한국에서는 상황마다 표현방법이 지독히도 복잡한 것은 사실이며, 사소한 말 잘못했다가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생님"처럼 상대방을 높이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스스로에게 사용하는 것은 꼴불견이며, 자기 자신을 높여 상대를 낮추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비칠 수도 있으므로 유의하는 편이 낫다. 중요한 것은 모르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고, 학교 교육과 매체에서부터 이를 적극 알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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