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경주김씨 조상을 찾다가 깨달은 족보의 허상

moonstyle 2023. 9. 1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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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국성 김씨는 워낙 고대에서 시작하다 보니 기록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현시대 족보의 근거는 시조로부터 1700여년 지난 조선시대 후기 이후의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다. 당대 후손들이 검증되지 않은 자료들을 받아 적고, 스스로의 출신성분을 높이기 위해 주작(做作)과 날조가 횡행했던 시절의 기록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경주 김씨, 안동 김씨, 권씨 등 한국에서 상당한 인구를 차지하는 신라계 김씨의 후예로서, 늘 의문을 가졌던 것은 왕족의 후손이 이렇게 많을 수 있는가였다.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 이런 예가 없다. 베트남의 왕성(姓)인 응우옌(阮)은 현 베트남 인구의 거의 40%나 차지하는데 왕조가 교체되면서 여러 성들이 편입된 결과로, 한국의 김씨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현대까지도 유독 한국에서는 까마득한 고대의 일을 작성한 근대의 비과학적인 문서에 집착하며 핏줄을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일제시대에 출판된 족보를 근거로 천년 전의 사람을 파조(派祖)로 삼고 후손을 자처하자 대법원까지 가는 일도 있었다. 이런 현상들과 후손들에 의해 쓰여진 검증 불가의 족보를 통해 나의 뿌리와 혈통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경순왕

 

족보 자체의 신빙성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며 김씨는 국성에서 유력 가문으로 바뀌었고, 고려 태조의 대우로 많은 혜택을 받은 까닭에, 현대까지 이어진 다수의 신라계 김씨의 실질적인 근원은 경순왕과 후손들이라 볼 수 있다.

 

대보공 김알지
정승공 김부 (경순왕)
영분공 김명종 (경순왕의 3남)
벽상공신 내사령 김예겸 (경순왕의 7세손)

 

경주김씨족보에 따라 시조를 찾아보니 위와 같이 나오는데, 뭔가 이상하다. "경순왕 - 영분공 - 임흥공 - 파간 억종 - 파간 계옹 - 아개공 - 예겸" 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김예겸은 삼한벽상공신이다.

김예겸이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기여한 삼한공신이면, 경순왕과 동시대 인물이라는 뜻이 되는데, "경순왕의 7세손"은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주김씨의 출발부터 심각한 오류로 시작한다는 것은 족보의 신빙성과 가치가 절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위의 족보상 영분공의 후손이자 김예겸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억종과 할아버지인 김계옹은 "파간(波干)"이라는 수식이 붙는데, 파간은 신라의 관등이며 고려에는 없다.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고려의 신하가 된 지 100년은 넘었을 고려의 조정에서 후손들이 어떻게 신라의 관직을 가지는가. 지금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의 이조참판이라고 적은 꼴이다.

 

 

 

실체적 진위를 밝히기는 불가능

기초적인 상식과 이치에도 맞지 않는 족보로 과연 혈통의 근본이며 가문의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성씨가 차차 보편화되기 시작한 고려 이후로 크게는 몽골의 침략과 왜란, 호란 등으로 한반도의 질서는 수차례 완전 리셋되다시피 하였는데 제대로 된 기록 또는 기억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거기다 족보 매매와 위조, 위장편입이 판을 치던 조선후기와 일제시대, 그리고 전 국토가 초토화된 6.25 전쟁까지 지나며 한국의 거의 모든 족보는 의미가 없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백성 다수가 성씨도 없다가 노비가 주인 따라 성을 붙이던 시절도 있는데, 족보 쯤이야 이리저리 수보를 거치며 명예와 권위, 특혜,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막 갖다 넣은 것일 수도 있다.

 

 

 

신라왕 계보



다시 족보 내용으로 돌아가서, 앞서 나온 '경순왕의 7세손' 같은 경우는 양보를 해서 직계가 아니라 차라리 7촌 이상의 방계가 아닌가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경순왕이 가진 신라 최후 적통의 권위와 경주 김씨 왕족에 대한 고려 조정의 특혜를 받기 위해 족벌 전체를 통합 및 편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라고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승공의 작은할아버지의 8촌의 조카"보다는, 고려왕 다음 서열인 정승공의 직계가 되는 것이 혈통을 내세우기 탁월하다 보니 항렬을 무시하고 들어간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고,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왕과 같은 핏줄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적이지 않은 고대의 기록이라도 시조의 인정과 중앙정부의 검증이 없이는 막대한 특권이 주어지는 구성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혈통을 중시하는 계급사회에서 특권지배층이 되는 것은 선택된 자만이 가능하며, 경주 김씨가 고려의 핵심계층으로 뿌리내렸다는 점은 명확한 역사적 사실이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귀족, 왕족이었던 사람들과 현대의 후손과의 연결고리를 과학적으로는 전혀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들 '우리 집안은 진짜' 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고려 태조 왕건조차 생뚱맞게도 자신의 조상이 당나라 숙종의 직계 후손이라고 숭조사업을 벌였다. 그만큼 '고결한 혈통'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였다. 궁예는 신라를 멸도라며 저주하면서도 '피'는 중요했던지 신라왕자 출신이라고 굳이 떠벌이고 다녔다.

 

 

투후 김일제(左). 참칭이 아니라면, 한반도 김씨의 조상이 된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신라 왕실은 흉노의 왕자인 김일제와 관련도 없으면서도 金씨라는 것에 착안하여 그 유명세를 이용하고자 후손을 참칭하였다. (이름때문에 그렇지 고대의 흉노는 강성하여 중국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인 적도 있다)

 

왕들도 이렇게 혈통 때문에 허세를 부리는데 범인들이야 오죽할까. 앞뒤 맞지 않는 족보는 혈통 내세우기를 위한 주작이 만연했던 한반도 역사의 일상적인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족보와 혈통은 절대적일 수가 없다

역사가 오래되고 곁가지가 많은 주요 성씨의 족보들은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족보의 오류로 가문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당사자라면 지금껏 쌓아온 믿음과 자아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므로 심히 두렵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기록이 부족한 관계로 교차검증이 어려운 점으로 인해 콩가루 논란을 일으키지만, 한국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성씨 전체를 그 옛날의 기준으로 갈아치울 수는 없을뿐더러,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의 조상을 멋대로 갈아치울 수는 더욱 없는 노릇이다.

 

 

신라 김씨의 탄생 신화를 담은 《금궤도》

 

 

봉건시대조차도 정 아들이 없다면 양자를 들일 정도로 가문의 대를 잇고 제를 올리는 것을 더 중시했는데, 여자도 제를 지내는 21세기에서 순혈주의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왕조가 바뀌고 계층의 변화와 이동, 수많은 전란과 환란을 겪으며 유전자가 섞일 대로 섞인 현대사회에서 천년 전의 혈통을 따져서 직계 조상을 정확히 모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현 상황에서는 뚜렷한 물증이 발굴되지 않는 이상 족보의 진위 또는 나와의 유전적 관계를 명확히 밝히기는 불가능하다. 근대를 전후로 누더기가 된 족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제는 알 길이 아예 없고, 그로 인해 애초부터 족보는 아예 사료로써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한다.

 

 

 

유행에 매우 민감한 종족

이렇게 난잡했던 족보와 한국의 흔한 성씨를 보면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한때 청소년 패션의 '국룰'로 통했던 패딩이 떠올랐다. 비싼 옷을 다 같이 유행 따라 사서 개성도 없이 똑같은 브랜드를 자랑하고 교복처럼 입고서 지하철에서 만나는 것처럼 너도나도 멋져 보이는 성을 사거나 편입되다 보니 조상이 비슷한 것이다.

 

 

 

 

조선시대까지도 성씨도 없던 노비가 인구의 반수를 차지했는데, 길어야 1~2세기만에 김씨 이씨 박씨 같은 왕족의 성이 흔한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뻔한 인과관계이다. 그 많던 노비는 다 어디 가고 다들 자신의 조상이 왕족이고 양반 고위층이라는데 이제 와서 검증할 방법이 있나.

 

 

 

피보다 문화가 진하다

진짜 조상이 맞는지도 모르는 시대, 제사 시간도 바뀌고 음식도 복장도 제멋대로 간소화해서 변하는 시대, 유교적 교리가 아니라 전통문화의 일부분으로 간주되어 의식을 생략하거나 통폐합하는 시대임에도, 족보에 불가침적 절대성을 부여하거나 제멋대로 해석하여 파벌을 만들고 원리주의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문중의 재산이나 이권, 영향력에 군침을 흘리는 젯밥의 목적이 다분하거나, 또는 부질없는 상징성과 우물 안 자기만족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맹목적인 신앙의 시대가 아니라 실증적인 과학의 시대이며, 변화에 둔감한 유교는 구닥다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신분 타령은 비웃음거리가 된 마당에 근본을 따지는 족보마저 근본이 없다면 현세대가 수긍할 까닭도 없다.

 

애초에 한국인부터가 북방계와 남방계가 섞이기 시작해서 전쟁과 피정복을 겪으며 중국, 일본, 몽골, 오랑캐 유목민의 혼혈 잡탕 그 자체인데, 아직도 단일민족이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피가 아니라 동질감이 중요한 것이다. 혈통에 대한 과도한 집착의 종착역은 나치즘과 우생학 같은 극단의 인종주의다. 

 

신빙성이 부족한 자료에 기대서 생사가 달린 것처럼 이전투구하기보다, 조상의 공적을 기억하고 위로하며 발복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드높이는 마음가짐을 우선시해야 할 것이며, 유대인이나 한족 개념처럼 성씨에도 생물학적 혈통보다 문화적 일체감을 부여하는 것이 명맥과 부흥에 훨씬 유리할 것이다.

 

 

 

 

※ 참고영상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0903603?sid=103

 

한국인 90%가 가짜 성·가짜 족보?...몰랐던 성씨 이야기

■ 박홍갑 / 역사학자 [앵커] 얼마 전 통계청이 2015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인구 수가 가장 많은 성씨는 여전히 김, 이, 박, 최씨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4개의 성

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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