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는 갈 수 있지만 과거로는 절대 가지 못한다. 미래로는 가봤자 현재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더 나은 결과물을 원하는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길 원한다.
이렇게 과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사람은 인생에서 아쉬운 순간들이 참 많고 리셋증후군처럼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상상을 많이 한다. 그럼 시간을 되돌아 특정시점으로 갈 수 있다면 모두가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패러독스, 평행우주, 자정작용
영화나 소설의 타임슬립 물(物)은 과거로 돌아간 누군가의 선택으로 인해 미래 결과가 바뀐다는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가설을 내세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평행우주(Parallel World)로, 같은 우주가 동시에 존재하며 시간여행자는 여러 우주를 왔다갔다 할 뿐으로, 서로 다른 세계의 결과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다른 가설이자 평행우주와 함께 적용하기도 하는 것은, 결과가 바뀌었어도 운명적인 자정작용으로 대세는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독재자를 쏴 죽여도 비슷한 악인이 다시 나타나 영향력을 행사한다거나, 누군가의 치명적 사고를 막아도 또 다른 사고로 대체되는 현상이다.
평행우주와 자정작용 이 두 가지 설정을 채택한 작품으로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일본 TBS 드라마 JIN-仁- (만화원제: 타임슬립 닥터진)으로, 현대의학으로 전근대인을 치료한다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더한 역대급 명작이다. (한국에서는 리메이크로 완전히 망쳐놓았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의 영향력으로 의학의 역사가 바뀌었어도 평행세계였고, 더불어서 자정작용으로 인해 역사적 인물들은 비슷한 생사를 겪었고, 현실의 발전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이론들을 보면, 어떻게든 정해져 있으니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무언가를 바꾸더라도 큰 결과는 바뀌지 않을 듯 싶다.
다만, 평행우주가 됐든 뭐든 간에 가장 하고 싶은 타임슬립은 내가 나를 만나는 '백투더퓨처' 방식이 아니라, 내 기억을 보존한 채 게임처럼 리셋해서 나를 다시 살고 싶다는 것이다. 복권도 맞추고 주식과 땅도 선취해서 부자가 되어 즐기면서 사는 허무맹랑한 망상에 도취된다.
망상을 깨트리는 자연과 운명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이 큰 부자가 되는 결과로 바꿀 수 있다면, 개입한 순간부터 세상의 다른 결과도 바뀌게 되므로 부자가 되리라는 장담을 할 수 없다.
자신이 바뀌는데, 남이라고 바뀌지 않는가? 즉, 돌아간 순간부터 원래 지나온 세계가 아닌 다른 세상을 살아야 하며, 자신의 다른 선택지가 결코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5차원 문명을 이룩한 미래의 인간들은 '정해진대로' 쿠퍼를 블랙홀로 안내한다. 그냥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Despite knowing the journey and where it leads, I embrace it and welcome every moment." (영화 Arrival 대사 中)
또 다른 영화 'ARRIVAL(컨택트)'에서는 시제가 없이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알고 있어도 원래 정해진 길을 가는 외계인과 루이스가 '재선택'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그들은 다른 예측과 선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우주적 관점에서는 시간은 정해놓은 약속일뿐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는 언제나 중첩되며, 선택 또한 스스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상대적인 '시간'과 달리 이렇게 '운명'이야말로 시적인 단어가 아니라 범우주적인 약속이 아닐까 싶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보이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원래 스스로 그러하며(自然), 설사 결과가 어떨지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야만 한다.
환각과 현실
인간이 만들어낸 판타지는 흔하게는 영혼이 바뀐다든지, 환생, 이세계, 대체역사물 등 그 상상력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동기는 모두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며, 그것이 빚어낸 환각에 도취되는 것이다.
리셋증후군에 빠지는 것도 작게는 '이불킥'에서 크게는 인생을 망칠 정도로 후회할 행동을 많이 했다는 자책이 작용한다. 그리고 잘못 키운 게임 캐릭터처럼, 거대한 사회에서 자신이 한없이 작고 약해질 때 버튼을 누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술이나 약물처럼 환각은 순간은 즐겁지만 깨어난 현실을 더 고통스럽게 하므로, 가벼운 상상 만으로도 족하다. 설사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거대한 흐름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가불가를 제쳐두고, 어떤 방식으로든 인생을 리셋하지 못하는 정서적인 이유가 있다. 과거로 가는 그 순간, 나는 내 미래(자식)와의 약속을 어떻게 해야 하나. 소중한 사람과 인연들을 포기하고, 다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아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후회 때문에 한 재선택이 또 다른 후회를 낳는 악순환이 되지 않을까.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미없는 예능 (0) | 2024.02.21 |
---|---|
경주김씨 조상을 찾다가 깨달은 족보의 허상 (0) | 2023.09.18 |
답이 없는 한국 농업 (0) | 2023.04.12 |
작은 사람 (0) | 2023.02.21 |
극혐의 제국 (0) | 2023.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