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재미없는 예능

moonstyle 2024. 2. 21.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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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켜면 볼 게 없다. 뉴스야 기본적인 기능이고, 교양, 다큐, 스포츠 등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한 번씩 별생각 없이 웃고 싶은데 그런 프로그램이 아예 없다.

온갖 미사여구의 자막과 웃음소리, 리액션, 편집술로 웃기는 척 하는데 입꼬리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재료가 별로면 양념으로도 커버가 안 되는 것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케이블에 나오는 예능 재방송을 보고 또 보며 낄낄댄 것 같은데, 요즘엔 예능 자체를 정색하며 보다가 10분도 못 견디고 채널을 돌린다.

교양인지 예능인지 분간이 되지 않고, 교양치고는 정보나 지식이 없고, 예능치고는 너무 재미없으며, 시청자와 별 차이도 없어 보이는 저들이 왜 막대한 출연료를 받는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비들의 세상

 

선배들이 무한경쟁의 정글에서 빡세게 굴러서 출연료를 꾸준히 올려놨더니, 별 재미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자리 꿰차고 눌러앉아서 단물을 빼먹고 있는 느낌이다.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지상파 3사, 종편 등 모든 예능 프로에 로테이션처럼 나오는 이들은 맨날 똑같고 심심하며 MC로서 특별한 능력도 없으면서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독점하고 있다.

15년 전, 모 유명 예능인은 "동물농장과 서프라이즈가 방송가의 '양대 날방'"이라고 했는데, 그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모든 예능프로가 날방이다. 찍어온 화면 보며 리액션만 해주는 것을 날로 먹는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완전히 대세화 고착화되었다는 것이 예능의 하향평준화를 잘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문제는 볼 사람은 보니까, 시청률이 나오니까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아니면, 한결같이 밋밋하고 전부 다 똑같으니까, 수요는 있지만 선택지가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같은 예능 프로를 만들면 무관심에 금방 도태되고 더 참신한 프로가 경쟁적으로 등장하던 시절이 먼 옛날 다른 세상이 되었고, 심의와 논란에 안 걸리고 적당히 추세에 따르는 것들이 전부인 세상이 지금의 현실이다.

 

 

 

어쩌라고



원인은 단 하나다. 목소리 큰 '불편러'들이나, 팬을 가장한 광신도들이 감 놔라 배 놔라 "빽-빽-"대면, 되도록이면 논란을 만들지 않으려는 제작진은 벌벌 떨면서 다 받아주다 보니, 결국 점점 말 한마디, 자막 한 줄, 몸짓 손짓조차 눈치보며 제대로 못하고 그냥 '뻔하고 적당히'만 하게 된다.

리얼리티와 차별화로 인기를 끌었던 경쟁력과 강점은 천편일률적 식상함으로 퇴색되며, 줏대 없이 퇴행과 퇴보를 거듭해서 정립된 '안전빵'의 결과물이 지금의 선비들의 예능인 것이다.

 

사라진 역동성 

 

유튜브로 10년 20년 전 클립을 돌려보며 웃다가도 씁쓸해진다. 앞으로도 이 유물같은 재방송을 반복해서 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예능이 현실의 만화경이라면 세상의 분위기가 참신함을 찾아보기 힘든, 역동성 없이 정체된 사회를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 다시 20세기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시대를 역행하는 '유교탈레반의 나라'가 와닿는 게 참 싫다.

예능은 예능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불편하고 기분이 나쁜지, 보기 싫으면 본인이 안 보면 되지 시청자게시판에 구구절절 항의하며 바꾸라 마라며 왜 저러고 살까. 옴부즈만이나 방통위에 제보하고, 방송사에 전화해서 따지는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살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주도하고 있었다.

꼰대를 욕하지만 누구보다 꼰대같은 사람들, 온 세상이 본인 감정을 중심으로 돌아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람들, 민주 진보를 외치지만 누구보다 수구적이고 구태의연한 사람들의 가식적인 현실이 별생각 없이 틀어놓는 TV 예능에까지 가깝게 다가와 조이는 것 같아서 지겹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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