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먹고사는 문제, 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치사해진다.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대단한 권력가들도 고작 돈 몇 천만원에 일생의 커리어를 망치는 것을 보면 이는 지위고하를 막론한 것이다.
나 역시 돌이켜보면 그 작은 사회에서 좁쌀만 한 것들을 두고 얼굴을 붉히며 싸우고 스트레스 받은 것들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아무리 고고한 척해봐도 내 본심 또한 그 똥통에 함께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범해지고 싶어도 당장 이 하찮은 몸뚱이가 앉을 편한 자리가 먼저인 것이 내 한계이고 그래서 또 바보같고 멍청한 짓을 반복한다.
그래도 이런 경험들을 통해 조금씩은 더 어른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자기만족을 해본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내면의 정화과정도 없다면 견디기 힘들 만큼 수치스럽다.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
성공한 사람들은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잔파동처럼 어느 정도 가변성이 있겠지만 정해진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것조차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사람의 지능 성격 근면함 집중력 인내 본능적 호불호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다. 본인이 태어날 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물려받고 유년기 환경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택불가한 정해진 운명이다.
자연의 섭리는 곧 운이 작용한다는 것이고 각자의 복불복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확률게임으로 작동하고 있다.
역경을 극복하는 능력도, 결정적인 순간의 선택도, 승자를 롤모델로 자극받아 성공하는 것마저 본인의 선천적인 DNA가 작용한다. 그런 잠재력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기회가 주어져도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작은 사람도 가끔씩 큰 행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거시적으로 그는 평생 작은 사람의 틀, 주어진 운명 안에서 잔파동을 그리며 지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크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는 바보같거나 옹졸하거나 비굴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래밍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워드 프로그램에다가 왜 포토샵 기능이 안 되냐고 원망한들 무슨 헛짓거리인가.
부끄러운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마저 이미 프로그래밍된 결과이다. 코어 프로그램에 애드온, 확장팩, DLC 추가로 계속 설치해가면 완성도 높게 진보하는 것도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정해진 운명처럼 처음부터 확장성에 한계를 가진 애플리케이션은 뭘 해도 오류와 씨름해야 한다.
DNA는 정해지는 것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선고를 받으면 허무하고 무기력하며 염세적이게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선고에 대한 다른 반응과 피드백도 운명이다.
운명을 개척한다는 허세 섞인 교양 용어보다는, 난 원래 성공할 DNA를 타고났다고 믿는 편이 정신적으로 건강할 것 같다. 당장 현실이 이상하더라도 나는 대기만성형의 프로그램이라고 확신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기 최면, 자아도취는 훌륭한 각성제가 되니까.
그러나 사실 인생은 고달프며, 난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놈이라는 자기합리화의 가능성이 훨씬 크다. 실패자들이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 범죄자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쳇바퀴 도는 대다수 서민들까지 대부분이 운명에 순응하고 살아가며 순간 닥치는 이벤트에 일희일비할 뿐이다.
원래 생긴 꼴이 이렇다
우주 관련 전공이나, 지구과학 교사들에게서 한 번씩 듣는 말들, 무한한 우주에서 티끌도 안 되는 존재인 주제에 이 작은 지구에서 아웅다웅하는 꼴이 너무 허무하다는 것.
인간이 원래 그렇게 인생무상을 느끼면서도, 당장의 밥 한 끼가 우선인 존재로 설계가 되었는데 어쩔 수가 없으며, 수많은 철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하찮은 내가 왈가왈부한들 의미 없다. 당장 내 눈앞의 일도 답답하고 한숨이 나오는데, 이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의 마음을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작으면서 큰 사람인 척하는 것이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 먹고 머리 좀 굵어졌다고 철든 척 하지만, 때에 따라 강도(強度)나 빈도(頻度)가 변할 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쿨한 척 대범한 척 해봐도 속 쓰린 표정은 숨길 수 없으며, 어차피 성공할 사람들과 그를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심술을 부릴 사람들도 정해져 있다.
추악함을 사랑하라
정해진 운명에 의해 생긴 모습과 앞으로 어떻게 살다가 죽을지 정해져 있으며, 그것이 아니라면 우주의 모든 현상들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각자 대인배든, 소인배든, 인간 말종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를 중재하는 가이드라인과 시스템이다.
위선 가식 허세 떨지 말고 솔직함은 갖추되, 수많은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이를 어기는 사람이나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에게는 처벌도 확실히 하면서, 쓸데없는 오지랖 말고, 이해와 관용도 가끔 베풀고, 매너와 교양을 잘 갖추며 서로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이런 평범한 상식이 잘 지켜졌으면 싶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을 거슬러, 리셋증후군 (0) | 2023.07.11 |
---|---|
답이 없는 한국 농업 (0) | 2023.04.12 |
극혐의 제국 (0) | 2023.02.18 |
이성과 감정의 대결 (0) | 2023.01.31 |
밴드왜건을 따라가는 양떼들 (0) | 2022.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