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성과 감정의 대결

moonstyle 2023. 1. 3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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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큰 사람이 승자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에서는 이성보다 감정이 이기는 편이다. 그래서 사회적 현상이나 공론화된 이슈에 대해 대화를 할 때 감정이입부터 하는 사람들이 특히나 많다. 대표적인 예로,

 

“네 가족이 당했다고 생각해 봐라, 그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위 질문에는 답이 정해져 있으며 이미 언어폭력으로 낙인찍혀서 인터넷에서는 '니가족충'이라고 불린다.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면 질문자가 원하는 정답이 되고, 그래도 그런 말을 하겠다는 사람은 가족도 버리는 패륜적 인간이 되므로, 무적 논리로 시전된다.

 

사회적 현상, 공론화된 이슈에 대한 대화 내지 토론은 누가 그 일에 더 슬퍼하는가, 누가 더 착한가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의견, 주장을 제3자의 시각에서 펼치는 것이므로, 감정이 주입된 정해진 답을 강요하는 '니가족충'의 질문 그 자체가 동문서답, 우이독경, 마이동풍 수준의 멍청함을 인증한다.

 

 

 

 

한국의 정치가와 그 지지자들이 진영논리에 빠져 극단으로 치닫는 근본적 이유를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공론화장에서 감정이입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과, 현실과 이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논리, 사고와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둘은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볼 때마다 한심하다 생각하고, 만날 때마다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공공의 이익에는 감정보다 이성이 지배해야 하며 그것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사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법을 발명한 연유이기도 하다.

 

당신 와이프가 잔혹하게 살해당해도,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시겠습니까

 

 

위 질문은 무려 미국 대선 토론장에서 나온 질문이다. 사형제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는지가 올바른 접근방식인데 오로지 증오라는 감정만을 끌어와 상대를 몰아붙인 것이다. 실제 답변은 그러지 못했지만, 적절한 답은 아래와 같을 것이다.

 

당신 와이프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사형 집행되었는데, 알고 보니 누명이었습니다. 이래도 사형제도를 존치하시겠습니까

 

 

 

 

누가 더 슬픈가

 

역지사지의 폐해 “나, 우리가 가장 괴롭고 슬프다”

 

누가 더 처절하고 억울한지, 어떻게 측정해서 우선순위와 가중치를 부여할 것인가. 이슈가 되고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으면 중요도가 높고 고결한 희생인데, 그럼 잔인하게도 주목을 받지 않고 이슈가 되지 않는 희생은 개죽음일 뿐이라고 이 사회와 정부가 대놓고 공인하는 것인가.

 

인정을 많이 받는 사건은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한 사건에 대해 차별로 발생하는 영원한 2차 3차 폭력을 가할 것이다. 이렇게 계측이 불가능한 경쟁적인 감정이입은 사회 통합이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낳는다. 전국감정호소대회에 나간다면 누구나 서로의 사정이 가장 힘들고 괴롭다.

 

 

 

 

 

감정대결과 멍석말이

 

한국 사회 전반은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되고 있다. 모든 일을 자신의 감정에 대입하고 타인을 몰아세우며 멱살잡이, 멍석말이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다. 공론화장에서 감정만이 지배한다면 아무런 해답을 찾을 수 없고 일방적 강요와 폭력만 남을 뿐이다.

 

"내 가족,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 없다. 일반화하고 혐오하지 마라"

 

얼마 전 나는 사회 현상과 그 일례를 말했다가 졸지에 혐오자가 되었고, 싸우자고 달려드는 그의 감정적 화법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왜 그와 만날 때마다 십 년 넘게 언성을 높였는지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서 도저히 융화될 수 없다는 것이고, 쓸데없는 감정 소모도 한계치가 와서 더 이상은 현상에 대한 의견을 사석에서 말하고 싶지 않다.

 

 

 

 

위정자에서부터 주변인까지 갈수록 대화가 통하지 않는 한국 사회는 각자의 신념에 따른 감정의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무리를 지어 서로 공감과 위로를 받고, 같은 믿음이 없다면 적대시하며 불협화음이 벌어지는 것이 일상이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낯부끄러울 정도로, 이미 한국사회의 문제해결 방식은 마녀사냥하고 종교전쟁하던 중세시대로 역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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