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등 인증이라는 것이 있는 지도 모르고 새해를 맞아 영남알프스를 찾았다가 주말도 아닌데 유난히 사람이 많은 것이 이상했다. 울산의 대기업들이 연초에 다 쉬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모두가 앱으로 인증을 하고 있었다.
100대 명산 인증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날의 힘든 종주를 마쳤는데, 집에서 확인해 보니 지방 정부에서 영남알프스 8봉 완등 인증서와 함께 선착순 3만 명에게는 은화까지 수여했던 것이었다.
이 사업을 몇 년째 하고 있는데 나는 왜 전혀 몰랐던 것일까. 파래소폭포에서 시작해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함박등, 채이등을 거치는 환종주를 했는데, 멍청하게도 인증을 하지 않고 오다니 허탈감이 밀려왔다.
황망함을 빨리 떨쳐내려고 직선 코스를 찾았고 배내봉도 찍을 겸 바로 다시 향했다.
첫째 날: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배내터널(배내정상 버스정류장)을 들머리로 잡으면 고도 680m부터 시작해서 오르막이 줄어든다. 대신 원점회귀가 번거로워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오전 일찍 출발하면 원점회귀가 가능하지만 좀 더 힘들다)
영남알프스의 상징인 억새평원이 펼쳐져 이어지는 코스로 고저차가 그리 크지 않아서 일찍 출발한다면 무난히 3봉 연계할 수 있다. 이 코스는 영남알프스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더 잘 보존했으면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영축산에서는 그냥 취서산장, 양산 쪽으로 하산하길 권장한다. 신불산국립자연휴양림 쪽은 지도상에는 여러 등로가 있고 근래까지 지나다닌 흔적과 안내판도 있지만, 하부 계곡에 사유지가 철조망으로 막아놓아서 다 내려가서는 길이 없다. 첫 번째 환종주 시에 계곡 따라 빠져나가느라 혼쭐이 났다.
둘째 날: 운문산, 천황산, 재약산
운문산 최단코스의 고도는 서서히 올라갔다 내려오므로 초보자에게도 무난하며, 정상의 탁 트인 조망도 훌륭하다.
운문산 들머리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상양마을은 주차로 몸살을 앓는 것 같았다. 주차공간이 거의 없는 좁은 마을 도로에 인증을 위한 등산객들이 몰려들어 차들이 점령하고 들머리를 가려면 사람들이 마을 생활도로를 지나가야 하므로 소음과 사생활침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자체에서 부지를 사들여서 탐방센터를 짓고 별도의 우회도로와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로 영남알프스에서 지정해제된 문복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얼음골 케이블카
운문산행이 짧아서 바로 근처에 케이블카로 올라갈 수 있는 천황산과 재약산이 눈에 띈다. 1일 3봉이므로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케이블카가 있으니 금방 갔다 오겠거니 했는데, 천황산은 그렇다 쳐도 재약산까지는 서두르지 않으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왕복 2시간 이상 소요)
재약산 정상은 바위에다가 공간이 좁아서 주말은 말할 필요도 없고 평일에도 줄 서서 사진을 찍는다.
경치를 보며 여유를 부리다가 케이블카 막차시간이 다가오자 천황재부터는 거의 질주하다시피 복귀해서 출발 2분 전에 'SAFE' 했다. 어두워지는 겨울 산의 공포는 무릎이 아픈 줄도 모르고 숨을 헐떡이며 달리게 한다.
셋째 날: 가지산, 고헌산
이틀 만에 6봉을 완료해서 이제 여유가 생긴다. 가지산과 고헌산의 최단코스 난이도는 무난한 편으로 차량이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양쪽 산을 완등할 수 있다.
가지산 정상의 묘미는 태극기가 있어 사진빨이 좋다는 것이고, 바로 옆에 '가지산장'이 있다는 것이다.
영남알프스 중에 가장 높은 해발 고도 1241m에서 먹는 라면은 황홀경으로, 지구상 어떤 점심도 부럽지 않았다.
친절한 산장지기와 착한 가격에 감동이 밀려온다. 부디 계속 정상의 자리에 그대로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외항재 들머리의 고헌산은 체감상 난이도가 가장 낮고 거리도 시간도 가장 짧아 초등학생 어린이도 충분히 함께 오를 수 있어 보인다.
고헌산을 끝으로 8봉을 완등하고 인증을 받았는데, 문복산이 빠진 것이 아쉽다.
영남알프스의 고지대는 한결같이 높은 나무가 없어서 조망이 매우 훌륭하다. 산을 잘 모를 때는 촌스럽게 천 미터 가지고 뭔 이름을 알프스로 갖다 붙이냐며 비웃었지만, 겨울과 초봄에 8봉을 향하면 왜 알프스인지 체감하게 된다.
한국처럼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는 곳도 잘 없고, 산이 도로와 그리고 도시와 매우 가까워 취미로 삼기 좋다. 맹수가 없고(지리산 제외), 어디서든 통신이 되니 비교적 안전하다.
굳이 먼 나라의 산을 갈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도 히말라야 못지않은 설산을 즐길 수 있고 알프스의 정취를 큰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등산 애호가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조건이다.
올해의 영남알프스는 영축산이 메인 테마라고 하는데, 새롭게 짤 내년의 완등 코스와 은화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이용한 들머리 주차장
간월산-신불산-영축산
①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주차장 (울산 울주군 상북면 청수골길 175)
또는
② 배내터널 (울산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144-61)
운문산
상양복지회관 앞 주차장 (밀양시 산내면 삼양길 58)
천황산, 재약산
얼음골케이블카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로 241)
가지산
석남터널 입구 (울산 울주군 상북면 석남로 24)
고헌산
외항재 주차장 (울산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 1138-4)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지산행] 진늪산-수석봉 (0) | 2024.03.04 |
---|---|
자도봉어 환종주 (0) | 2023.12.28 |
포항 근교 가벼운 등산 (0) | 2023.11.21 |
옥천 정지용 생가, 육영수 생가 (0) | 2023.07.12 |
부여 백제문화단지 (0) | 2023.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