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의 세세한 부분까지 탐닉하는 마니아나 전문가가 아닌 이상 기존 부여의 관광자원들 만으로는 선뜻 먼 길을 가기 힘들다.
사라진 절 터와 석탑, 산성 등 일반 여행객이 보기에 밋밋한 유적들만 남아있던 부여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 문화단지는 늘 궁금했고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앞선 포스트에서 경주에서의 지적과 같이 '터' 만으로는 역사를 즐길 사람도 많지 않아 유인이 거의 되지 않으므로, 테마파크가 되더라도 주저 말고 개발해서 어떻게든 거대한 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견지이기 때문이다.
신라 하면 경주, 경주가 곧 신라인 반면, 백제는 전성기를 지나며 천도를 이어가서 중심지를 명확하게 정하기가 애매한 느낌이 있다.
공주(웅진)를 대표적으로 알고 있지만 의외로 약 60여 년 남짓 머무른 임시수도였으며, 최후의 수도는 부여(약 120년)였다. 정작 백제가 가장 오래동안(약 500년, 70% 이상 차지) 유지한 수도이자 전성기를 맞이한 곳은 현 서울지역(위례성)이다.
서울에는 몽촌, 풍납 등의 설명이 없다면 인지하기도 힘든 흙무더기 토성을 제외하면 백제 사적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조선에 가려져 오랜 역사에 비해 백제의 존재감이 한없이 미미하다. 그래서인지 충청도를 백제의 심장으로 알고 있는데, 실질적인 심장은 서울지역이었고, 충청지역은 쇠퇴 후 마지막 불꽃을 피운 곳이라고 본다.
목조가 대부분인 동양에서 고대 왕궁 등의 문화재가 제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고, 경주 또한 랜드마크였던 황룡사나 월성도 터만 남아있지만 그래도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 등이 복원 및 보존되어 있고, 천마총을 비롯한 고분군 등이 있어 천년수도를 장식하지만, 공주·부여 등지는 경주와 비교하기에 초라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백제문화단지이다. 사비궁과 능사가 재현되어 있지만 정확한 사료나 위치 기반이 아닌 관계로 문화단지, 즉 테마파크의 형태가 되었다.
그로 인해 역사적인 가치가 없는 모조품 세트장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지적도 있고, 형태와 건축 양식이 당대 백제 양식이라기보다 한참 후인 조선의 것에 가까워 보이는 문제점도 있다.
당대 양식을 따르면 백제와 연관성이 깊은 일본 건축물(호류지 등)과 유사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은 왜색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추측된다. 문화와 역사를 구별해서 바라보지 못하고 반일정서가 고대 문화재 재현에까지 작용하여 역사성을 잠식해 버린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찬란한 백제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감할 만한 인프라가 없는데 그럴듯한 왕궁과 목탑까지 재현하여 부여에 백제 고도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관광객을 흡수하는 주요 자원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다.
결정적으로 주변에는 민자를 적극 유치해서 리조트와 아웃렛이 들어서, 군 단위에도 체류형 관광이 잘 정착되었다는 상징성도 크다.
그런 점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료에도 재현을 위해 민·관·학이 노력한 결과 성공적인 관광 매개체로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며, 단체여행이나 단발성 이벤트에 의지하다가 관광객 유치에 곤란을 겪는 다른 역사적 도시에도 시사해 주는 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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