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못 가니까 특히 일본이나 동남아 수요가 제주도로 많이 몰렸다. 불쾌지수 높은 상황에서 어딜 가나 북새통이라 짜증스럽고, 비싼 숙소와 렌터카, 바가지 입장료에 밥값도 비싸고 대접도 시원찮은데 해외보다 더 많이 돈이 든다. 5천만의 관광 수요에 비해 제주도는 너무 좁고 한정적이다.
무더운 여름 한낮에 날씨와 사람에 치이는 성산일출봉이나 섭지코지 등 직사광선을 맞이하는 곳은 가지 않거나, 지나가는 길에 잠깐 내려 먼발치에서 인증사진만 찍는 것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로울 것이다.
사려니숲길은 여름 낮 제주에서 알려진 여행지 중에서 가장 쾌적한 야외이자 오아시스같은 곳이다. 일종의 등산로지만 경사가 거의 없으며 어른 아이 불문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할 수 있는 피서지이다. 숲길은 이어져있으므로 양방향이며, 차를 이용한다면 주로 1118번 지방도(남조로)에 있는 붉은오름 입구로 가야 한다.
별도 입장료는 없고, 입구 주변에 노상 주차장이 있지만 공간이 많지 않아 양 길가에 보이는 대로 주차해야 하며, 보도블록이 없고 차들이 고속으로 달리는 곳이라 위험하니 주차 진출입, 승하차 및 도보 이동시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일단 입구에만 들어서면 동화처럼 다른 세상에 진입하게 된다.
방문객이 많기는 하지만 숲이 넓어 나무 그늘과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 산책로 정비가 매우 잘되어 있고 삼나무 피톤치드 향이 마스크 너머 느껴질 정도로 삼림욕에 제격으로, 여름 날씨와 인파로 인한 스트레스와 체증이 한 번에 내려갈 정도로 제주도 여행 중 유일하게 더 머물고 싶었던 곳이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줄기가 대나무처럼 길게 쭉 뻗어있고 키가 커서 햇빛을 잘 가려주고 바람이 잘 통한다. 일본에는 이런 삼(스기), 편백(히노끼) 숲길이 아주 흔한데 인적도 드물어서 숲과 인간의 한가로운 조우를 통해 치유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제주도의 삼나무 숲도 일제시대에 인공 조성된 것으로 이렇게 조경용이나 벌목용으로는 괜찮지만, 햇빛을 다 가리고 뿌리가 깊지 않아 주변 생태계나 산사태에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고 한다.
한국의 흔한 소나무가 일본에서는 삼나무라고 보면 된다. 여행이라는 것이 원래 이국적인 풍광을 즐기는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흔한데 비슷한 거리의 비행기를 타고 가서 고물가와 교통체증, 주차난 및 인파를 헤치고 겨우 체험해보는 것 같은 기분은 좀 묘하다. 인당 2만원이 넘는 입장료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곳들도 많았는데, 유일하게 입장료가 없었던 사려니숲이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인간에게 안식처로써의 숲이 곁에 있는 것은 큰 축복이며, 잘 정비된 숲길은 자연 그대로의 테라피를 선사한다. 그리고 먼 제주에 가서야 희소성과 소중함을 깨닫는 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주변의 숲을 더 많이 찾아가 걸어야겠다는 깨우침을 받는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종달리 엉불턱 우도 전망대 (0) | 2022.08.04 |
---|---|
천년의 숲 비자림 (0) | 2022.08.03 |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 (0) | 2022.07.24 |
포항 송도해수욕장과 송도솔밭 (0) | 2022.07.10 |
영천 만불사 (0) | 2022.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