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곡지
원래 목적지는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이었지만 근처에서 초코 케이크를 먹고 싶다는 동행자의 요청에 카페를 찾다가 발견한 반곡지는 청송에 있는 유명한 호수가 연상되었다.
만추를 맞이하며 그림처럼 호수 주변 물에 잠겨있는 나무와 유영하는 오리들을 바라보며 의도치 않은 감상과 망중한을 즐기게 되어 엔돌핀이 솟구쳤다.
잔잔한 호수는 언제나 정서적인 안정을 심어줘서 차를 처음 샀을 때, 조용한 저수지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반곡지도 어떻게 보면 시골에 있는 평범한 저수지인데 대도시 근교에 있고 사진 포인트가 좋아서 유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조용한 평일 여유로운 시간에 연인 또는 혼자라도 '기억의 습작'같은 노래를 들으며 반곡지에서 사색을 즐겨 봄이 어떨지.
삼성현역사문화공원
경산은 대구의 위성도시라 역사적인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대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과 연관성이 많다.
삼성현(三聖賢)은 우리에게 해골물 일화의 깨달음으로 유명한 원효, 한반도에 유학을 확립한 설총,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 세 분의 성현을 말한다. 경산은 원효대사와 일연선사의 태어난 고향이고, 설총은 원효대사(설서당)의 아들이므로 여러모로 역사적 의미를 기리는 근본 있는 공원이라 할 수 있다.
날씨 좋은 주말에 삼성현공원은 가족 나들이 인파로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분위기다. 놀이터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즐길거리는 전통 그네와 썰매 타는 것 정도이지만, 한강변처럼 돗자리를 피고 앉아 먹고 노는 피크닉 장소가 되어 있었다.
본인도 어릴 때 원효의 해골물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쿨피스인 줄 알고 벌컥 마셨다가 3살짜리 남동생이 빈 쿨피스 곽에 오줌을 싸놓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구역질이 날 정도로 트라우마처럼 뇌리에 박혀있다.
나는 성현이 될 그릇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보다, 모든 음식은 냄새부터 맡아보고 조심해서 먹자는 생활의 교훈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런데 실제로 '이거 먹으면 체할 거야'라는 생각을 계속하면 멀쩡한 음식을 먹어도 진짜 체한다고 하며, 이는 원효대사 해골물 일화의 플라시보 효과와 반대인 일종의 노시보 효과로 볼 수 있다. 두 효과 모두 뇌에서 보내는 신호에 의해서만 몸이 작동하는 것에서 벌어지는 일로, 세뇌나 암시에 취약한 인간의 정신상태를 잘 설명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성현은 스스로의 뇌를 의지대로 잘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고 본다. 어떤 공격과 위협에도 마인드콘트롤을 통해 뇌의 신경 물질 분비를 제어하여 초연할 수 있고, 자유자재로 집중력을 높이거나 신체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초인의 경지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뇌를 개척, 정복할 수 있다면 인류는 뼈를 깎는 수행 없이도 모두 원효대사처럼 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희소성이 사라진 보급형 성현이 지배하는 인간 세상은 과연 유토피아일까.
지금 현실은 팍팍하지만, 100여 년 전 사람이 현대인의 삶을 보면 유토피아라고 느낄 것이고, 역사상 어느 순간보다 많은 사람이 편리와 권리를 누리고 있는 시대임은 틀림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 현재 관점에서 바늘구멍 같은 성현의 달성 조건도 나노 단위로 진화할 것이며, 그러한 과학의 수혜로 최대 다수에게는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 자명하다.
삼성현공원에서 깨달은 것은 대다수의 중생에게는 실천이 어려운 정신적 수양과 철학적인 고뇌보다, 인류 보편적인 행복과 구원을 위해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적극 수용하고, 그에 걸맞은 실증적 연구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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