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왕건은 명백한 궁예의 후계자이다. 소련의 흐루쇼프가 신적인 존재로 군림했던 스탈린에 대해 격하운동을 벌였어도 그는 스탈린의 정통을 이은 사람이듯이, 왕건이 고려의 실질 창업자 궁예의 모든 유산을 물려받은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궁예하면 빠지지 않는 승자 왕건의 기록에 의한 희생양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공감이 가는 이유가, 전임자에 대한 유언비어와 비방, 보복으로 얼룩지는 현대 정치판을 보더라도, 그 당시의 기록의 신빙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궁예는 여론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는 과정과, 구중궁궐에서 변절하는 권력자의 극단적 전형을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인물이라 극적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데, 한편으로는 실존인물이 이렇게 짜맞춘듯이 시나리오처럼 전형적일 수 있을까 의심을 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