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포항스틸러스와 스틸야드 그리고 네이밍 스폰서

moonstyle 2022. 10. 2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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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야드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도 시즌 최종전을 위해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많은 인파가 찾은 포항 스틸야드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거대한 용광로처럼 관객을 압도했다. 항상 '최초'라는 영예의 기록을 간직한 한국 최고의 명문구단 포항스틸러스는 스틸야드와 함께 프로축구의 선진화를 변함없이 모범적으로 선도하며 지역민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경기시작 한참 전부터 북적이는 스틸야드 북문

 

포항이 가진 최초, 최고의 기록들

1.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축구 클럽
2. 한국 최초의 축구전용구장
3. 한국 최초의 클럽하우스
4. 한국 최초 ACL 2연패
5. 한국 최초 구단 법인화
6. 한국 최초 유소년 시스템
7. 한국 최초 명예의 전당
8. 한국 최초 외국인 선수 영입
9. K리그 최초의 더블 (리그+FA컵)
10. K리그 최초, 최고 클럽월드컵 3위
11. 2020년까지 ACL 최다 우승 클럽
12. K리그 최초 5위의 우승
13.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K리그 모두 우승
14. K리그 원년 멤버 중 유일하게 강등되지 않은 클럽
15. FA컵 초대 챔피언
...

 


역사가 120년 넘은 구단이 즐비한 유럽의 클럽들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축구 변방인 한국에서 포항에는 그 누구도 족보를 들이밀 수 없을 것이다. 인구 50만의 중소도시에서도 창단 50주년을 맞이하고 명문구단의 지위를 유지하며 시민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는 포항은 K리그의 이상적인 지역밀착의 모범사례라 할 수 있어 축구팬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경기 후, 선수단을 기다리는 팬들

 

 

 

스틸야드와 라데, 파리아스의 추억


90년대 종합운동장에 의자도 없이 계단식 시멘트 자리에 앉아 개미만한 선수를 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스틸야드를 마주했을 때의 위압감과 선수를 눈앞에서 봤을 때는 감동의 탄성을 자아냈었다. 월드컵경기장이 건설되기 전, 서울에도 없던 20세기 유일한 한국의 축구전용구장에 대한 포항 시민의 자부심도 크다.

 

 

 

선수단 벤치 바로 뒤에 있는 스틸야드 프리미엄석의 전망

 


샤샤, 사리체프, 데니스, 데얀, 모따 등 K리그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용병이 많지만 축구팬과 전문가들이 꼽는 최고의 용병은 90년대 중반 리그를 폭격했던 포항의 라데 보그다노비치이다. 축구계 변방의 작은 도시에서 용병에 대한 강한 임팩트를 선사하며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까지 진출한 라데 이후로 우수한 동유럽 선수들이 줄이어 K리그에 입성하는 등, 포항은 용병 시장 개척에도 선구적이었다.

그리고 재밌는 축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K리그 최초의 브라질 감독 파리아스와 스틸러스 웨이, '황선대원군'이 이끌던 아름다운 축구는 포항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평생의 감동을 안겨주었다.

 

 

 

서포터와 선수단이 함께 하는 응원 세레모니

 

 

이처럼 누구 부럽지 않은 인프라와 역사, 화려한 스토리텔링과 콘텐츠를 가지고도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미진한 까닭에 포항이 만약 서울과 같은 대도시였다면 전국구 구단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축구 행정가들이 일본의 영향을 받아 지방 중소도시를 우선시해오며 포항의 예도 많이 들어왔지만, 기업구단을 중소도시에, 시민구단이 대도시에 배치되어 오히려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보는 것이 맞다.

또, 이런 스틸러스의 모든 영광의 순간과 업적은 모기업 포스코의 아낌없는 지원이 절대적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포항제철의 민영화와 상장 이후로 축구단에 대한 지원이 내리막길을 걸어왔고 운영 자금이 시민구단 수준이 되어 강팀 이미지는 희석되고 선수 육성으로 연명하는 셀링 클럽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기존에 갖고 있던 저력으로 여전히 성적을 내는 것을 보면 역시 시스템 선진화와 인프라, 유소년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시즌 종료후 큰절하는 선수들

 

 

포스코 스틸러스, GS 서울도 나쁘지 않다


평균 관중 5천명 수준에 티켓값 만원~2만원으로 포항과 같이 ACL 결승에 진출하는 팀이 유지되기는 불가능하다. 축구선수의 연봉은 상당히 높고 연간 운영비용이 백억 단위가 소요되는 반면, 축구팬은 그만한 돈을 쓰지 않으면서도 눈높이는 매우 높다. 그러므로 재정은 기업의 사회 환원과 같은 의미의 희생적인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지자체가 아니라 기업 구단이 주를 이뤄야 하고, 적극 유치하고 독려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 특혜라는 당근이 제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팬이나 지자체는 현실적으로 홍보에 대한 파급력이 미약함에도 기업의 기부성 출자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네이밍 스폰서나 경기장 운영권 등의 혜택을 주는 것을 반대하며, 일부 유럽축구 원리주의 서포터, 팬들은 기업구단 자체를 적대시하기까지 하며 세금이 강제적으로 각출되는 시민구단을 정답으로 여기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포항아톰즈 시절 황금기 - 황선홍, 홍명보, 라데



구단명에 기업이 들어가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면 매우 반길 일이다. 포항도 포철 아톰즈였는데 이참에 포스코 스틸러스로 다시 시작해서, 90년대 모범적인 메인 스폰서 유치 사례로 손꼽히는 포항 유니폼의 '주택은행', '하이트맥주' 처럼 이제 네이밍 스폰서로까지 선도적으로 활용한다면, 축구단에 돈 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주주들, 더 많은 투자를 원하는 팬들 모두를 좀 더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반대 측은 축구 선진국들은 클럽에 기업명이 거의 안 들어가고, 야구처럼 지나치게 상업성을 내세우면 축구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명분을 에둘러서 표현하는데, (세계 최대의 상업적 스포츠 이벤트가 축구이다) 쉽게 대놓고 말해서 기업명 들어가면 '쪽팔린다'는 주장이다. 재정건전성보다 유럽처럼 FC, 유나이티드 넣어서 그럴듯하게 '있어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지극히 유아적이면서 사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네이밍 스폰서 적극 활용되어야


프로야구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역 밀착, 흥행과 구단 명칭은 전혀 관계가 없으며, 히어로즈의 경우처럼 모기업도 없이 선수팔이 한다는 오명을 썼던 구단이 기사회생하여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강팀으로 도약할 수 있을 정도로 구단명에 기업이나 브랜드가 들어가는 스폰서 유치는 구단 재정에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한다.

 

 

 

동네 식당 간판도 간접 홍보될까봐 방송에서 모자이크하는 마당에, 여러 매체에서 매일 수시로 언급되는 기업 팀명의 막강한 홍보효과와 그 수익을 프로축구는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스포츠 야구 뉴스 화면)



프로스포츠는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고 철저히 상업적인 동기부여를 제시해야 하며, 티켓과 중계권 수익 만으로는 운영이 불가능한 한국 프로스포츠의 특성상 수익원이 가장 확실한 네이밍 스폰서 카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매스컴에 수시로 노출되기를 원하는 기업 홍보팀의 니즈를 수용하여 재정을 탄탄하게 다지는 것이 현명한 것이지, 유럽병 걸려서 기업명 들어가는 것을 쓸데없이 부끄러워한다고 자금이 생기지 않는다. 축구가 일상인 유럽 따라 하려면 상위리그 만원 관중과 시청률이 보장되고, 5부 6부리그까지 관중이 끊이지 않아야만 하는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기업구단 현 명칭 네이밍 스폰서 적용 예
FC서울 GS 서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삼성 블루윙즈
울산 현대 호랑이 현대중공업 호랑이
전북 현대 모터스 현대 모터스
제주 유나이티드 SK 유나이티드
포항 스틸러스 포스코 스틸러스
전남 드래곤즈 포스코 드래곤즈
대전 하나 시티즌 하나은행 시티즌
부산 아이파크 아이파크 FC


세금을 파먹고 있는 시민구단들 역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의무로 설정되어 있는 지역명 우선을 철폐하고, 네이밍 스폰서를 통해 자생력을 강화하도록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에서 제도를 수정,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지역명이 우선인 프로축구, 프로농구보다 기업명이 우선인 프로야구, 프로배구가 더 인기가 좋으며, 중요한 것은 '내 고장, 내 팀'이라는 인식 형성에는 구단 명칭이 기업이든, 촌스럽든, 미국식이든, 유럽식이든 간에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프로 클럽)은 자선단체가 아니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세금 없이 운영이 불가능한 K리그의 재정부실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밥그릇만 늘리려는 축구 관계자들이나, 겉멋에 집착하여 유럽 따라 하기에만 급급한 몰지각한 축구팬들의 허영심부터 청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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