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잡 없이 동네 공원에 마실 가는 기분으로 편안하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K3리그 경기장의 분위기는 화창한 가을 날씨가 운치를 더해주었다. 입장료가 없고 사인볼 행사도 하고, 구단 선수와 프런트를 소개하는 부채도 나눠주며, 선수와 감독, 심판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다 들리는 VIP석에 앉아 양팔을 걸치니 유럽의 어느 축구장이 부럽지 않았다.
지방 군소도시인 경주에는 프로스포츠 팀이 없지만, 3부리그(세미프로)인 K3리그를 상징하는 역사와 전통의 명문 경주한국수력원자력축구단(경주한수원FC)이 있다. 원래 실업축구 독립리그인 내셔널리그였다가 K3에 편입되었으며, 향후 K리그2와 승강제가 이뤄진다면 승격이 유력한 강팀이다.
관중은 200여명 정도였지만, 경기력은 프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날은 K3리그가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상위권 순위가 변동될 수 있는 분수령이 되는 경기였으며, 더군다나 화성FC와는 승점 1점 차이라서 치열한 양상을 보였다. 불과 20분 만에 양 팀이 한 골씩 주고받았지만 아쉽게도 추가 득점은 나오지 않았고 무승부로 끝났다.
K3리그 경기의 가장 큰 장점은 선수의 땀방울과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가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다 보이고 들린다는 것이다. 선수와 감독, 코치진이 끊임없이 심판에게 투덜대며 신경전을 벌였으며, 경기중에 감독이 선수를 불러 지시하는 말까지 다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소리들은 동네 축구장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K3는 권위있는 공식 경기이며 경기 진행과 수준은 프로급이니 관중에게는 더할 나위가 없다.
경주시민운동장은 낡았지만 관람 분위기는 상암이 부럽지 않았고 안락하고 쾌적했다. 관중이 매우 적기 때문인데, 흥행이 되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좋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이다. 다만 축구전용구장 만능론자에게 K3리그 경기는 구장 인프라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관중이 많이 늘어서 관람 환경을 개선해야 될 때 전용구장이 필요한 것이지, 전용구장이 있어야 흥행이 된다는 말은 주객이 바뀐 것이라 본다. 관중이 별로 없다면 종합운동장도 나쁘지 않으며, 공공 유휴시설에 대한 시민의 여가선용에서는 적절하다.
경주에는 경주시민축구단(경주시티즌FC)도 있었지만, KFA에서 향후 승강제 시행을 위해 클럽 라이선스를 요구했고(독립 법인화, 유소년 운영 등), 그에 따라 시 재정에서 연간 운영비용(20억~25억)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2020년 말에 해체되었다. 전통 명문인 한수원FC가 경주로 왔는데 굳이 중복으로 세금을 쓰는 것이 보기에는 좋지 않은 상황이라 축구인 입장에서는 아쉽겠지만 결정은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이렇게 어느 날 불쑥 해체해버리는 K3, K4 팀들이 더러 나타나는데, 프로와 세미프로, 아마를 통틀어 지자체나 공기업이 대부분 운영하기 때문에 공적 자금 없이는 축구 리그가 유지되지 못하는 민낯이 드러난 결과이기도 하다. 굳이 축구장이 아니더라도 놀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한국의 프로스포츠 리그들은 수요에 비해 과잉 공급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이다. 그로 인한 수혜가 한적한 관람을 즐기는 나의 여가생활이라니 이걸 마냥 좋아해야 할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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